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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Oct 18. 2020

중심잡기 -ing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는 세상에 던져졌다. 대학원을 갈 계획이었는데 Watson Fellowship이라는 장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대학원 입학을 미뤘다. 그렇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여행을 필수로 해야 하는 그 프로그램 또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난 갈 곳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12년 동안 학생으로 살아왔는데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계획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다 일시정지를 눌러 놓은 상태인데 나는 이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공백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은 나한테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식적인 허락이었으니까. 나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 2주를 사용했다. 지금까지 학교 진도를 따라가느라 시간이 없어 못했던 일들을 다 적었다. 새로운 언어 배우기, 번역 공부 하기, 에세이 쓰기, 소설 쓰기, 친구들 만나기, 독서 많이 하기, 밀린 드라마와 영화 보기, 운전 연습 하기, 새로운 자격증 따기, 푹 쉬기 등등. 수첩 한 페이지를 빼곡히 적을 정도로 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이런 일들을 하며 공백 기간을 채워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장기적으로 있을 것이라는 점도 설렜다. 코로나 덕분에(?) 하지 못했을 일들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나름 만족했다. 


그냥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푹 쉬며 놀까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제 학생도 아닌데 언제까지나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친구의 학교 선배가 일을 그만두며 후임을 구하고 있었다. 심리 상담 클리닉인데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가르치는 일을 몇 번 해본 나는 잘 맞을 것 같아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합격을 했다. 여름 동안만 일을 하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내년까지 하게 되었고 업무량도 늘며 정말 완벽한 한국의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삶 또한 나쁘지 않다.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이렇게 글을 쓰고, 친구들을 만나며 완벽하진 않지만 최대한 일상을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왔고 대학에 간 이후로 사라졌던 “내 방" 또한 생겼다. 이 정착하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만족하냐고 물으면 난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족하고 있는 이유는 이런 삶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언젠가는 다시 떠날 것이라는 걸 항상 대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난 바로 Watson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1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할 것이다. 그 후 다시 미국으로 대학원을 가지 않을까. 4년간 계속 떠돌이 같은 삶을 살아왔기에 정착하는 삶을 동경해 왔지만, 난 알고 있다. 벌써 정착해 버리면 후회할 거라는 걸. 일시적인 안정감.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시작될 의미 있는 불안정감. 그 사이에서 난 중심잡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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