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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Sep 14. 2023

32화 - 1번이냐 2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드디어 또 찾아왔다. 자리를 바꾸는 그 날이 바로 내일이다. 이번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가는  차례다. 차라리 공부가 쉽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수학이 가장 낫다. 국어처럼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도 없고 영어처럼 모르는 단어가 발목을 잡을 일도 없다. 수학은 기본 공식만 외우고 있으면 그 때부터는 응용해서 풀 수 있다. 특히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더 그렇다.          


 누구 옆에 앉을지 아직 결정을 못했다. 후보는 2명이다. 헷갈리는 시험 문제에서 정답이 1번이냐 2번이냐 고민하는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열심히 기억을 떠올리면 보일 듯 말 듯 하듯이, 지금도 정답이 보일 듯 말 듯 한다. 물론 정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앉아도 되겠지만, 내 마음이라는 걸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50% 확률로 선택한 이 결정이 나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결정할 수도 있다.    

      

 1번은 3월 짝꿍이자 내 첫 번째 짝꿍이었던 미래. 미래 옆에 앉는 건 장점이 정말 많다. 미래는 늘 그렇듯이 내일도 교실 앞쪽 한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을 것이다. 당연히 미래 짝꿍 자리도 센터가 된다.     


 그 자리에서는 수업을 열심히 들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래는 반 1등이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옆에 앉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아... 원래 내가 1등이었는데... 1등에 대한 감각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          

 짝꿍 경쟁자는 효석이가 유력하다. 미래가 예쁘고 똑똑하지만 교실 맨 앞줄 센터는 대부분 피하고 싶어 하는 자리다. 공부를 정말 좋아하는 효석이 같은 애들만 제외하고.    

 

 효석이 아버지와 미래 아버지가 친한 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미래의 옆자리가 조금 멀게 느껴진다. 심지어 효석이가 화이트 데이에 미래에게 사탕까지 줬다고 하니... 효석이는 분명 이번에도 미래 옆에 앉으려고 할 것이다. 미래를 선택할 경우 효석이를 제쳐야 한다. 물론 스피드에서 나와 효석이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효석이는 미래에게 걸어갈 때도 책을 읽으면서 갈 것 같으니까.          


 2번은 두 번째 짝꿍이자 지금 짝꿍인 라영이. 라영이는 내 이상형이었다. 그런 라영이와 같은 반이 되었고 마침내 짝꿍이 되었다. 심지어 라영이가 내 옆에 앉아줬다.


 라영이 옆은 공부 측면에서는 애매하다. 내가 라영이를 의식하다 보니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듣다가도 수업이 안 들릴 때가 있다. 라영이가 내게 공부에 관해 물어봐서 내가 가르쳐 줄 때면 심장이 터질듯한 기분이다.


 문제는 라영이가 내 이상형이 맞는데 내가 라영이를 정말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애매하다는 점이다. 아직 라영이와 많이 친해지지 못하기도 했고, 수련회 때 일을 계기로 요 며칠간 더 말을 못 나누기도 했다.                

 라영이와는 미래만큼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똑같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옆자리에 앉았지만 미래와 달리 라영이는 여전히 어렵다.


 짝꿍 경쟁자는 효석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자들이다. 라영이는 다른 반에서도 우리 반을 부러워할 정도로 예쁘니까. 그런 라영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는 외모로 보나 공부로 보나 당연히 나다. 하지만 이번에는 라영이가 짝꿍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라영이에게로 가는 것이다.      


 내가 라영이 옆에 앉기로 마음먹었다면 순발력과 스피드가 필요하다. 영만이 같은 놈이 갑자기 치고 달리면 눈앞에서 라영이 짝꿍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 라영이를 선택하게 되면 정혁이에게 미리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차피 정혁이는 이번에도 남-남 짝꿍을 선택할 테니 날 위해 잠시 스크린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라영이에게 가는 길이 한결 편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마음만 먹으면 내가 가장 먼저 갈 수 있기는 하지만 내 마음이 확고하다면 이런 안전장치 하나 설치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래나 라영이 옆이 아닌 다른 여자애 옆에 앉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봤다. 나라나 규아 같은 짝꿍은 어떨까? 하고 싶진 않다. 이번에는 피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나라나 규아는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분명 교실 사이드에 앉을 것이다. 반 1등을 탈환하겠다는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 둘 옆은 안 된다.  


 단순히 한 달 동안 옆에 앉는 짝꿍을 정할 뿐이다. 하지만 절대 간단한 일은 아니다. 선생님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는 누구 옆에 앉아야 할까... 눈부신 계절인 5월의 내 짝꿍은 누가 될까...          

 ***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오늘은 5월 짝꿍을 정하는 날이다.      


 내가 반장선거 때 내세운 공약이고, 재밌고 신박한 공약이라고 호응도 많이 얻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힘든 점도 많다.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편하게 남자 짝꿍을 선택하는 정혁이와 그 짝꿍인 승석이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짝꿍을 정하는 날마다 설레고 두렵고 긴장된다.    

           

 물론 영만이 같은 놈도 있었다. 영만이에게 두려움과 긴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신나는 기분만이 존재한다. 영만이는 생긴 건 그냥 보통이지만 여자 앞에서 말주변이 없었다. 그래서 영만이에게 호감이 있던 여자들도 영만이와 조금만 이야기해도 떠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영만이는 늘 누군가를 좋아했다. 소위 금사빠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여자와 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영만이였기에 본인이 원하는 여자와 짝꿍을 할 수 있는 이 제도는 축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첫 짝꿍을 정할 때 매우 호기 있게 라영이 옆에 앉았던 거고.      


 어젯밤 늦게까지 고민을 해봤지만 난 아직 마음을 완전히 정하지 못했다. 3월 짝꿍 미래와 4월 짝꿍 라영이 중에 누구 옆에 앉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새 결정의 시간은 와버렸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반장이 처음에 공약으로 말할 때만 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담임도 의외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라. 자! 빨리 빨리 세팅하자!”          


 담임은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우리 모두는 각자 가방을 매고 교실 뒤로 이동했다. 소지품은 미리 각자 사물함에 넣어뒀기 때문에 모든 책상은 깨끗했다. 마치 어떤 책상이라도 새로운 사람을 주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한 때는 내 자리였던 책상이 보인다. 미래와 티격태격 열심히 공부했던 맨 앞줄의 책상과 라영이와 설렘을 주고받았던 세 번째 줄의 책상은 다시 한 번 내게 오라고 하는 것만 같다.  


 “자! 여자들 먼저 원하는 자리에 가서 앉도록!”    

      

 담임의 말과 함께 여자들은 움직인다. 역시 나라와 규아처럼 꼭 원하는 자리가 있는 애들이 먼저 움직인다. 나라와 규아가 앉은 자리는 1년 내내 같을 것만 같다. 그리고 자리의 주인이 똑같을 것 같은 자리가 하나 더 있다. 맨 앞줄 한가운데. 미래는 천천히 그 책상을 향해 간다. 어차피 그 자리에 경쟁은 없다.         

  

 라영이는 미래보다 앞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자리를 잡았다. 같은 자리다. 나와 짝꿍을 했던 바로 그 자리. 5분 전까지만 해도 앉아있었던 그 자리.      


 라영이가 같은 자리에 앉은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나와 계속 같이 앉고 싶다는 메시지일까? 머리가 더 혼란스러워 진다.           


 “이제 남자들 가자! 아직 출발하지 말고 잠깐! 영만이는 누구 옆에 앉으려고 그렇게 서두르는 거냐?”

 담임은 이런 우리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이 즐겁나 보다.    


 “내가 셋을 세면 출발하는 거다. 자, 하나!”

 마치 운동회 때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이 떨려온다. 갑자기 소변이 미친 듯이 마렵다.          

 “셋! 출발!”          

 소변 생각이 잠깐 내 머리를 스치고 있을 때 담임은 ‘둘’을 생략하고 곧바로 ‘셋’이라는 출발 총성을 울렸다. 마지막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그래도 일단 라인은 정해졌다. 첫 번째 책상이냐 세 번째 책상이냐만 결정하면 된다. 내 걸음이 세 번째 책상에 도착했을 때 마음이 가는대로 앉으면 된다.          

 그렇게 한걸음을 내딛었을 때 내 어깨를 툭 치고 앞서가는 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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