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 생긴 일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복지관으로 향하는 유진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복지관에 다닌 지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말씀드릴 게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할머니는 멈칫했지만 선생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상담실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손이 유진의 작고 말라붙은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유진이가요…”
선생님은 말을 고르며 잠시 숨을 골랐다.
“경계성 인지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의 집중이 짧고, 또래 아이들과 다른 생각을 하며,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을 보입니다. 자라면서 문제해결, 계획, 추론 등의 고차원적 사고 능력이 평균보다 낮을 수 있어요.”
선생님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점도 있어요. 특정 영역에서는 기억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할머니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린 손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이어 말했다.
“지난번 만들기 시간 때도, 유진이는 하루 전 보여준 도안을 정확히 기억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놀란 사건도 있었어요. 한 친구가 잃어버린 팔찌를 찾는데, 유진이가 그 팔찌를 친구가 어디에 두었는지 정확히 알려줬거든요. 그때 친구 어머니가 유진이에게 정말 고맙다며 감탄했어요.”
할머니는 잠시 침묵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녀를 떠올렸다. 아침마다 유진은 할머니가 깜빡 잊고 놓고 가려던 물건들을 챙겨주곤 했다.
“할머니, 우산 잊었어요. 오늘 비 온다 했잖아요.”
“할머니, 시장 보러 갈 때 이거 꼭 들고 가요.”
그때는 유진이 단지 똑똑한 아이려니 생각했지만, 그 놀라움 뒤에 숨은 현실은 할머니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경계성 인지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종종 집단활동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해요. 유진이도 그런 경향이 조금 보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 가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적응이 느려서 혼자 떨어져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돼요.”
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손에 힘이 들어가 유진의 작은 손을 더 꽉 잡게 되었다.
“그게… 많이 힘든 건가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든 아이가 다르긴 하지만, 유진이는 특별히 배려가 필요한 아이일 수 있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지금처럼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희도 복지관에서 가능한 모든 도움을 드릴 겁니다.”
선생님의 말이 따뜻했지만,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기억력은… 그저 특별한 재능일 뿐인가요?”
“네, 유진이는 분명 비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오히려 유진 스스로가 이런 능력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차근차근 도와주고, 아이가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게 중요해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그럼 제가 뭘 더 해야 할까요?”
“유진이의 작은 성공 하나하나를 칭찬해 주시고, 아이가 힘들어할 때 천천히 이해시키는 연습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유진이의 기억력이 발휘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작은 도전 과제를 주는 것도 좋습니다. 복지관에서도 그룹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도울게요.”
할머니는 선생님의 조언에 감사했지만, 어린 손녀가 세상의 벽에 부딪히며 아플까 걱정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천천히 가르치고, 꾸준히 칭찬하고 격려해 주시면 분명 잘 성장할 겁니다.”
선생님의 말에 할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할머니는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고요한 집 안, 창문 밖의 달빛이 흐릿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유진은 한쪽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우리 유진… 이렇게 작은 손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상을 겪어야 할까.”
할머니는 유진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내가 다 막아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순간, 유진이 꿈결에 중얼거렸다.
“할머니… 나 잘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곧 유진의 맑은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유진. 할머니가 네 곁에 늘 있을게.”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유진과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다. 마당에서 감자를 캐며도, 부엌에서 된장을 푸며도, 할머니는 유진에게 말을 걸었다.
“유진아, 이 꽃 이름 알아?”
“음… 이거 작년에 심은 금잔화죠.”
“맞아, 유진이는 어떻게 이렇게 잘 기억하니?”
“그냥요, 할머니가 다 알려줬잖아요.”
할머니는 손녀의 기억력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기로 했다. 유진의 생활습관을 가르칠때면 할머니는 그것을 반복해서 가르쳐줬고, 유진이 좋아하는 동화를 읽어 줄 때면 이야기를 중간에 멈추고 “그다음엔 뭐였지?” 하고 물었다. 유진은 언제나 정확히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진이 복지관에서 돌아오며 말했다.
“할머니, 선생님이 나 잘했다고 칭찬해 줬어요.”
“그래? 뭘 잘했는데?”
“친구가 책 읽는 순서를 까먹었는데, 내가 다 기억해서 알려줬거든요.”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 한편이 저렸다. 유진이 가진 특별함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알지만, 동시에 그것이 유진을 더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