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진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 집...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할머니는 거실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비틀거리며 술병을 잡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깊은 실망과 분노가 가슴에 차올랐다. 유진은 소파에 앉아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살 거면 우리 집으로 가자.”
할머니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여전히 아들을 포기하지 못한 애틋함도 묻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 대신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조금 마시고 나서야, 흐리멍텅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집사람이…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때까진 여길 떠날 수 없어요.”
할머니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는 화를 참으려 애쓰며 물었다.
“애 버리고 도망간 사람을 뭐 하러 기다려? 정신 좀 차려! 네 딸은 저렇게 방치되고 있는데, 애비라는 게 그것밖에 안 되니?”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술에 절어 제대로 된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주섬주섬 유진의 남은 옷가지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작은 가방에 겨울옷이며 장난감 몇 개를 넣으면서도 할머니의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했다.
“네가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애는 누가 키우니? 기다리긴 뭘 기다려? 그런 사람은 안 돌아와. 애만 고생시키지 말고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야지!”
아버지는 술병을 내려놓으며 애써 몸을 일으키려다 이내 곧 쓰러지고 말았다.
할머니가 유진을 부르자, 유진은 조용히 걸어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차갑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낀 할머니는 마음이 저며왔다.
유진은 아버지를 한번 쳐다봤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있었다.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며,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정신 좀 차려라. 술 그만 마시고!”
문이 닫히고 나서도 거실의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길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아이의 손을 잡은 할머니의 손은 더욱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