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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Dec 16. 2024

2부  과거를 찾아서

도훈과의 첫 만남

유진은 오래된 사진을 손에 쥔 채 마음을 다잡고, 도심 한복판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에서 "용산과 영등포"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탐정 사무실 중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한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낡은 건물 3층에 위치한 사무실 문 앞에 서니, "믿음 탐정 사무소"라는 희미하게 바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진은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박하면서도 정돈된 공간이 나타났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낡은 나무 바닥이 발밑에서 은은한 삐걱거림을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무실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공간 활용이 뛰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장에는 다양한 사건 파일이 꽂혀 있었고, 책상 위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도훈이었다. 그는 단정한 셔츠 차림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어딘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오래된 파일철과 손때 묻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몇몇 책들의 제목은 희미하게 바래 있거나 곳곳에 작은 메모지들이 삐져나와 도훈의 세밀한 기록 습관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벽에는 흑백 사진 몇 장과 사건 관련 지도들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지도 위에는 다양한 색깔의 선과 표식들이 그려져 있어 그가 다뤄온 수많은 사건들의 흔적을 암시했다.     

"유진 씨죠?"

도훈은 유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전화로 말씀하신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잊고 있던 기억 속 단서를 찾고 싶으시다고요?"

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진을 내밀었다.

"이 사진에 나오는 여자를 알고 싶어요. 그리고, 제 가족이 왜 그날 밤 이런 대화를 나눴는지도 알고 싶어요."

도훈은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진만으로는 확실히 단서가 부족해 보이네요. 하지만 시작점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사진 속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추적해 봅시다."

도훈은 책상 서랍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들고 질문을 이어갔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대화에서 '용산', '영등포'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하셨죠. 혹시 이와 관련해 다른 단서는 없나요?"

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용산이나 영등포에서 장사를 하겠다며 할머니에게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 달라고 했어요. 할머니는 어머니를 미워하셨는데 왜 그렇게 할머니가 싫어했는지, 반대하셨는지는 알지 못해요. 처음엔 저와 아버지를 두고 떠나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니 그전부터 싫어하셨던 것 같아요.”

도훈은 메모를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먼저 용산과 영등포 주변에서 정보를 모으고, 이 사진 속 인물을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겠네요. 제가 알아볼 테니 며칠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이 사건이 단순한 가족사 문제가 아니라면… 준비해야 할 게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유진은 그의 단호한 태도에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과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첫걸음을 제대로 내디딘 기분이었다.     

유진은 도훈과의 첫 만남에서 느껴졌던 묘한 긴장감을 풀고, 그가 내민 커피잔을 받아 들며 자리에 앉았다. 도훈은 민간 탐정으로서, 그동안 여러 사건을 해결해 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유진과의 대화는 그에게도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도훈이 차분히 말했다. "어머니를 찾고 싶다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과거를 추적하려는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유진은 그가 묻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여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어머니가 떠난 이유가 아직도 기억 속에서 분명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왜 떠났는지,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셨는지… 그걸 알고 싶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버린 이유도 알고 싶어요. 왜 내가 버려진 아이가 되어야 했는지…"

도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조용히 있었다. 그의 눈빛이 유진을 향해 천천히 돌아왔다. "그게 바로 당신이 어머니를 찾는 이유군요." 도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시작해 볼까요? 당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 그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면 됩니다. 어머니가 남긴 흔적들, 그 작은 단서들을 찾아가면 되죠."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제 어머니를 찾는 일이 더 이상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 도훈이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에, 유진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만의 힘으로 어머니를 찾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 도훈과 함께라면 조금은 덜 두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유진과 도훈은 함께 어머니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도훈은 자신의 탐정 사무실에서 가능한 모든 자료를 동원하며, 유진이 가진 기억의 조각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유진은 그동안 기억해 냈던 어머니와의 작은 순간들, 유진이 어릴 적 들었던 대화 속의 단서들을 떠올리며 말했고 도훈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다.      

그들의 협력은 점차 힘을 얻어갔다. 유진은 자신이 기억한 모든 것들을 철저히 분석하며, 도훈은 그것들을 현실의 단서와 맞춰가며 진실을 쫓았다. 유진의 기억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 어떤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모든 정보가 서로 연결되었다. 도훈은 그 사실에 감탄하며, 유진의 능력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유진, 당신의 능력이 정말 대단해요, " 도훈은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그때 그 말을 믿고, 더 많은 단서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기억한 모든 것들이 중요한 실마리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유진은 도훈의 말에 힘을 얻었다.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도훈과 함께라면, 그녀는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단서들이 하나씩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유진의 마음속에 희망이 다시 생겨났다. 어머니의 흔적을 찾기 위한 여정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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