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유증은 생각보다 길었다.
치료를 계속하면서 나는 점점 더 약해졌다.
일도 멈춰야 했고, 병원비는 부담이 되었다.
결국, 남편과 나는 결정을 내렸다.
집을 팔고, 차를 팔았다.
그동안 애써 유지해왔던 것들을 내려놓는 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치료비는 계속 필요했다.
다행히 내 병이 중대질병으로 등록되면서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그날 밤, 남편의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처음으로 내 고통을 알아봐 주는 것 같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치료는 길고 고통스러웠다.
수술 후 찾아온 극심한 통증, 거울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내 모습.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더 무너져 갔다.
무엇보다 나를 짓눌렀던 것은 몸의 고통이 아니라 마음속 절망이었다.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고,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 언제 끝날지 모를 치료의 두려움, 그리고 계속해서 몰려오는 공황 발작과 우울감이 나를 옥죄었다.
"괜찮아질 수 있을까?"
어느 날, 힘없이 중얼거리는 내게 남편이 조용히 손을 잡았다.
"당신이 아프다고 해서 우리 가정이 무너지는 게 아니야. 당신이 없으면, 내가 무너져."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했다.
"우리, 다시 잘 살아보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지친 얼굴, 하지만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는 그 사람.
순간 울음이 터졌고, 애써 참아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남편은 내 앞에서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도 나만큼이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음을.
나는 여전히 치료 중이고, 언제 완치될지 모르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원수 같았던 남편이 나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가정을 지키고,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스스로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같이의 가치’를 일깨워 준 그들에게 꼭 한번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고마워. 함께라서 행복했고, 함께라서 가능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