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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May 18. 2020

나는 하노이에 산다

 
나는 하노이에 산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한국 부모님댁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1월 명절을 쇠러 한국에 왔다가 발이 묶이고 말았다. 처음 체류 계획은 한 달이었으나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항상 한국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꿈꿨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집에만 갇혀있으니 마음이 자꾸 과거로 미래로 떠돌다가 결국, 집이 있는 하노이에 닿는다. 하노이에 있으면 한국이 그리운데, 한국에 있으면 하노이가 그리워진다.
 
하노이는 내게 애증의 도시이다. 하노이에 살게 된지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껄끄러운데가 있다. 낯선 타국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느껴지는 이물감을 견뎌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우선 살아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러다 영 안내키면 언제든 짐 싸서 다시 돌아가자고. 그러나 지금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 없이, 당장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실정.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어디에서나 힘든 법일테지만, 남편은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익혀야만 했고 난 출산 이후 찾아온 외로움, 우울감과 혼자 싸워야 했다. 더러 어떤 장소나 공간은 위로가 되기도 할텐데 내가 하노이에서 느낀 건 쓰디 쓴 고립감이었다. 생경한 풍경만큼이나 낯선 사람들. 정 붙일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어찌어찌 흐르고 이젠 낯설고 어색했던 느낌도 많이 무뎌졌다. 하노이가 좋아졌다기 보다는 이곳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이 쌓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가족의 삶의 배경이 되는 곳이니까.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했던 놀이터, 심심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매일 같이 향했던 시장, 주말 아침이면 즐겨 찾는 쌀국수집, 아픈 아이를 데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찾았던 병원, 장을 보러 가거나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찾는 한인타운의 거리 등. 하노이 거리마다 우리의 추억이 빼곡하다. 이제 과거를 표현할 줄 아는 아이는 택시를 타고 지나가면서 “저기서 우리 달리기 했잖아”, “저기 아빠랑 농구가는 길이다”, “저긴 할머니랑 같이 간 곳이네” 하며 재잘재잘 거린다. 이런 곳을 어떻게 싫어할 수만 있겠는가. 그래서 애증의 도시, 하노이.
 
하노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한국에서 멀어지는 기분이다. 잠깐씩 한국을 다녀갔을 땐 서울의 반짝거림, 편리함, 깨끗함이 그저 좋았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고, 사고 싶었던 걸 사고, 가고 싶었던 곳을 가고. 그러나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이곳에 내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 실감한다. 코로나의 공포도 조금씩 수그러들고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난 이곳에 일상이 없다. 집도 없고 직업도 없고 남편도 없고(남편은 하노이에 있다). 평생 내 나라, 내 집이 있는 곳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잠시 잠깐 거쳐가는 곳, 임시 거처가 되어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가슴이 저릿하다. 가끔씩 스치는 불안감. 내가 속한 곳은 어디일까. 하노이일까, 한국일까. 다섯 살 우리 아들에겐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디일까. 타국에 산다는 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공중에 붕 떠서 살아가는 그런 슬픈 일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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