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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Mar 31. 2021

길을 잃어버렸다

엄마의 방황

아이를 낳고 조금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이후  내가 가장 괴로웠던   하나는 내게 목표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삶의 방향성이랄까.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경력을 쌓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야 할 곳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정 중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만났지만 그것도 해치워야  하나의 목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남편을 따라 하노이에  보니  경력을 이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끝도 없는 육아의 세계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이제  인생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삶은 엄마의 삶이 되어버렸다. 내가 엄마이기 이전에 품었던 꿈과 가능성들이 갑자기 사라진 기분. 아마도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낯선 타지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편을 보며 그들의 성장을 나의 성장으로 여기며 보람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삶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결혼 전까지 내가 보던 엄마, 내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들. 엄마에 대한 감사함은 제쳐두고 엄마의 삶에서 느끼던 연민.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을까  엄마에겐 나와 동생, 아빠를 돌보는  전부일까 생각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시시하다고 멋대로 판단했던 것도 같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는데,  보듯 뻔하게 그려지는 나의 삶도 똑같지 않겠는가. 시시해.  

다시 말하면  삶에  이상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공상의 세계. 학교가 너무 싫었던 학창 시절엔 항상 비운의 시한부 인생을 상상했고 제법 머리가 크고 연애의 감정에 눈을 떴을  영화 같은 운명의 사랑을 상상했고  시기가 지나자 나는 커리어 우먼을 꿈꾸었다. 국제무대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발로 뛰는 전문가. 그것조차 싫어질 때는 낯선 나라에 가서 사는 상상을 하곤 했다.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 그리스의  호스텔에서 일을 하는 . 때론 현실과 꿈의 괴리가 너무 커서  인생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단조로운  삶을 다채롭게 채워준 것도,  삶을 이끌어준 원동력도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하노이에 와서 살게  것도  덕이 아닐까 싶은.

그런데 아이를 낳고 하노이에 발이 묶였다고 생각하니 머릿속 공상의 세계가 가동하기를 멈췄다. 현실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를 두고 멋진 커리어 우먼이   없었고, 갑자기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도 이젠  과정에서 겪을 어려움이 너무  보였다.   숨 막히게  것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도 뻔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정말이지 쑥쑥 큰다. 그만큼  시간도 속절없이  것이고 그렇게  삼십 대, 사십 대를 보내게 되는 걸까. 인생 선배들은 모두가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너의 시간이  거라고, 그때 되면 무엇이든 너의 것을 찾게  거라고. 근데  정말이지 그게 무엇인지..  길이 없었다.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있다면.

이런 나의 갑갑함을 옆에서 지켜봐 온 남편도 함께 답답해하며 잔소리 섞인 응원의 말을 잊지 않았다. 무엇이든 정말 원하는  있다면  일을 위해 한국과 베트남에서 떨어져 살아야 하더라도 한번 시도해보라고. 그런데 가정의 평화를 깨면서 까지 내가 원하는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얼마나  일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거주지를 다시 옮기고 아이에게서 아빠를 빼앗고 시댁의 원성을 들어가며   있는 걸까.  평생 그런 단호한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내가 원하는  인생의 그림,   그림을  이상을 그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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