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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Oct 30. 2021

길었던 봉쇄가 끝나갈 무렵

하노이 봉쇄 이후의 일상

막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 하노이 근교 산업단지에서 시작된 코로나 확산으로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고, 코로나 확진자 증가 추세에 따라 식당이 문을 열었다 닫길 반복 했다. 그러다 7월 호치민에서 시작된 코로나 4차 대유행은 멀리 하노이까지 변이를 퍼뜨렸고 곧이어 극단적인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있는 곳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온라인 뉴스 채널에선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잡혀가는 사진이 올라왔다.  말 그대로 필수적인 목적을 제외하곤 외출이 불가한 상태. 그 길었던 봉쇄 기간이 이제 끝나간다.    


거리는 거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아이 유치원 등원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 어느덧 6개월에 접어들고 있다. 반년에 가까운 시간, 뭘 했나 싶기도 하다. 집에서 오롯이 아이와 보내야 하는, 내 앞에 놓인 텅 빈 시간이 막막하게 느껴질 땐 하루가 참 길었는데 먹이고 먹고 치우기를 반복하니 꾸역꾸역 세월이 흘렀다. 어제 뭐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비슷한 하루가 쌓여 6개월이 되어간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이제 그 끝이 보이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오랜 기간 집에서 가족들과 살을 부대끼며 지낼 수 있었을까. 세 명 모두가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움직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면, 대게는 갑갑함에 몸서리쳤지만,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역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우리 가족의 무사함에 감사했다. 심지어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일 터였다. 삶이 극도로 제한되면서 혹시 모를 사건사고로 인한 가족의 안전을 걱정할 일이 거의 없었다.   평소 남편의 술자리가 늦어지면, 특히 한두 시간 거리의 지방에서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이면,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곳 타지에서 도움의 손길을 적시에 받지 못해 큰 비극으로 이어진 사고들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통행이 막히고 남편의 행동반경이 눈에 빤히 보이게 되니 머릿속 불안 회로가 작동할 일이 거의 없었다. 통행 제한이 풀리고 식당이 다시금 문을 열면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이젠 다시 시작이구나 싶다. 잦아진 남편의 술자리.  


다시 시작된 건, 남편의 술자리뿐만이 아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외출병이라고 할까. 평소엔 하루라도 집에 있는 걸 못 견뎌했다. 주말이 오기 전엔 끊임없이 두뇌를 가동해야 했다. 어디 갈까, 뭐할까, 뭐 먹을까. 한국에선 잠깐만 인터넷에 접속해도 전국 방방 곳곳 좋아 보이는 곳이 수두룩한데, 이곳에선 장소도 제한적이고 교통편과 언어에도 제약이 따르니 마땅히 할 만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맘에 쏙 들지 않는 선택지 두세 개를 가지고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끝없이 재보는 일은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봉쇄기간 동안 반 강제적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나갈 수도 나갈 곳도 없으니. 처음엔 좀이 쑤셨으나 나중엔 차츰 익숙해져 마트를 가는 날 조차 줄었다. 그저 집에서 시간을 보낼 뿐. 나중엔 나가고 싶은  욕구마저 생기지 않더라. 그랬더니 웬걸, 생각보다 편안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도, 준비를 하거나 이동을 하며 보내는 시간도, 다녀와 밀린 집안일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도 사라졌다. 그 시간에 그저 집에서 쉬면 되었다.


마침내 외식이 허용된 얼마 전 주말, 뭐할까 뭐 먹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몇 달만의 외식인데 뭘 먹어야 할까?) 하지만 어쩐지 멀리 외출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고 결국은 집 앞 고깃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숯불에 구운 고기와 푸짐하게 한상 가득 차려진 반찬은 정말이지 맛있었고, 아이를 데리고 근처 쇼핑몰을 실컷 구경하다 운동화를 한 켤레 사서 돌아온 것도 만족스러웠다. 특별할 것 없는 주말 저녁이었지만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외식에 쇼핑까지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마치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늦은 저녁 사람이 북적대는 쇼핑몰에서 나와 집으로 향할 때, 그동안 못 먹었던 배달 음식을 잔뜩 먹어대 더부룩하고 불룩 나온 배를 보며, 다가오는 주 빡빡하게 잡힌 남편의 저녁 자리 스케줄을 들으며, 어쩐지 피로해졌다. 내가 돌아가고자 하는 일상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는 사람 간의 거리만을  의미한 게 아니었나 보다. 익숙했던 일상과도 반강제적 거리두기.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게 마련이다. 내 몸에 꼭 맞춘 것 같던 삶의 모습들이 다시 마주하니 어쩐지 낯설고 껄끄럽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모두들 ‘뉴 노멀’에 대해 말하나 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여행을 하던 시절은 그리우나, 아마 전과 같을 순 없겠지. 이젠 그 의미를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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