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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Nov 24. 2021

길을 잃어버렸다 2

엄마의 욕구

나는 아직도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모르는구나. 어느 날 남편 회사 앞 카페에서 차 한잔과 샌드위치를 시키는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낯선 도시를 발만 보고 걷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처럼, 순간 여기가 어디지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은 기분.  난 삶을 양손에 넘칠 듯 부둥켜안고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한 치 앞도 모르고 있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아이에게서 씁쓸한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낀 날이었다. 아이에겐 크는 과정일 테지만 엄마에겐 상처가 되는 그런 일들이 있다. 그날따라 분노에 찬 나는 아이를 아빠 사무실에 데려다주고 혼자 거리로 뛰쳐나와 걷기 시작했다. 최근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해 그 어느 때보다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시간을 보내다가 모처럼 혼자가 되니 새삼 느끼는 바가 많았다. 많이 큰 것 같아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보면서 항상 푸념했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다. 아이는 점점 더 내 품을 벗어나려고만 할 텐데.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쪽은 나였다.   


아이가 내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사실 전부나 다름없다.) 엄마가 아닌 나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젠 그게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좀 더 날씬하고, 젊고, 가능성으로 가득 찼던,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내가 기억 저편에서 지금의 날 손가락질하고 있을 뿐.  언제부터 아이를 (그리고 남편을)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일이 내 관심사의 전부가 되었을까. 나를 위해 욕망하는 것을 멈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뭐든 잘하고 싶었고 예뻐지고 싶었고 똑똑해지고 싶었던, 그런 욕심과 욕구들이 이제는 집의 청소 상태와 아이의 학업 성취도와 가족의 영양 상태로 한정된다. 눈에 띄는 성과도 없고, 끝나지도 않고, 예측 불가한 과제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그런 경기. 어쨌든 뭐라도 해내고 싶어 자꾸 부딪혀보는데 내 고집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점점 지쳐간다. 언제부터일까, 만성 욕구불만 상태가 돼버렸다.


자주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워킹맘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내 삶은 비교적 여유롭게 느껴지고, 아이가 아직 날 필요로 할 때 함께 있어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원치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것도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축복임을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행복, 한 사람의 성장을 밀착하여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은 그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난 어느 순간도 내 아이의 엄마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여전히 엄마가 아닌 내가 존재한다. 엄마로, 주부로서만 만족할 수 없는 내가. 왜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할 수 없는지 자책도 해본다. 살면서 지나치게 성과주의에 물든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자식을 위해 희생해온 엄마의 공허한 뒷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뭐든, 난 지금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원하고, 그건 아이나 남편이 아닌 날 위한 것이길 바란다. 그런데 무엇보다 답답하고 속상한 건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너무 오래 내 머릿속이 날 위해 작동하길 멈춰버린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나와, 엄마가 되어버린 나의 간극은 이제 더 이상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는데 내가 원하던 걸 더듬더듬 찾아가다 보면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내 모습만 보인다.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은 엄마가 된 지금의 내가 행복한 것. 그 길은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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