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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Oct 26. 2022

가구를 사는 게 이토록 어려울 일인가

주부의 좌절감

하노이 6년 차. 여전히 현지어는 부족하고 움직임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그 불편함이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이동은 주로 택시로 하고 오토바이나 자동차 운전은 꿈도 꾸지 않는다. 베트남어는 배우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번번이 초급반의 벽을 넘지 못해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국 소소한 불편함을 참고 사는데 한 두 번씩 분통이 터질 때가 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막막했던 것 중 하나는 필요한 물건을 찾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주로 육아 용품이었는데 물건의 폭이 훨씬 제한적이었고 정보마저 부족해서 선택하기도 쉽지 않았다. 몇 안 되는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를 갈 때마다 매의 눈으로 육아용품을 탐색했고 한국보다 비싼 값에 파는 수입 브랜드를 구입하곤 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잔뜩 쟁여온 것은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이곳에도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되어 불편함이 많이 해소되긴 했다. 사진으로도 검색 가능해 사용하기 어렵지 않고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할뿐더러 중국산 물건 등은 한국보다 훨씬 싼 값에 구매할 수도 있다(사진과 실제 받은 물건이 다를 경우 반품이나 교환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이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먼저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번역기의 힘을 빌려 검색부터 해본다. 그래도 없으면(특히 다이소에서 구할 수 있는 신박한 아이템 같은 것들은) 한국에서 주문해 한번씩 해상이나 항공택배를 받곤 한다. 식재료는 교민 규모가 큰 덕택에 한국 마트에서 웬만큼 구할 수 있는 편. 의복은 여전히 사기 어렵지만 몇 년 사이 하노이에 문을 연 글로벌 SPA 브랜드를 적극 활용한다. 한국에 비해 종류가 적고 특히 남자 옷의 경우 큰 사이즈가 없어서 남편 옷과 신발은 한국에서 사 와야 한다. 필요한 옷을 구할 수 없는 불편함보다는 때때로 예쁜 옷을 직접 눈으로 보며 구경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더 크다.    


최근 내가 분통을 터트린 것은 가구 구매이다. 이곳의 많은 아파트는 가구나 가전이 포함된 풀옵션 아파트이다. 처음 아파트를 분양할 때 집주인이 가구 전체를 짜 넣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가구 제작 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가구 판매 시장은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같은 장기 거주민들은 가구가 전혀 없고 세가 좀 더 저렴한 ‘노옵션’ 집을 선호한다. 내 가구나 가전을 쓰는 게 마음이 더 편하고, 풀옵션 집에 살면서 집주인의 취향(전혀 필요 없는 가구나 과한 인테리어 등)을 참고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제는 내가 원하는 가구를 어디서 찾느냐는 것. 이케아를 모방한 가구점이 한둘 있지만 질은 떨어지는데 비해 가격은 훨씬 비싸고 예쁜 수입 가구점은 범접할 수 없는 가격대를 자랑하니, 모두들 차라리 제작이 낫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SNS를 뒤져 맘에 드는 스타일의 가구를 제작하는 곳을 발견해 직접 보지도 않고 주문하는 모험을 했는데(하노이에 쇼룸이 없었다) 가격 대비 어딘가 어설펐고, 현지인에게 물어 소개받은 곳은 까다로운 외국인의 주문에 질려버렸는지 갑자기 묵묵부담, 연락을 받지 않는다. 소비주의 시대에 물건을 사는 게 이토록 어려울 일인지 분통이 터지면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애가 타 얼마나 인터넷을 뒤졌는지 모른다. 마치 찾다 보면 내가 원하는 가구를 판매/제작하는 곳이 떡 하니 숨어있기라도 할 것처럼.   


사실 이 이야기는 해외 생활의 어려움을 가장한, 반복된 좌절감에 대한 것이다. 최근 해소되지 못한 다양한 욕구로 분노가 불쑥불쑥 올라오면서 엄한 곳(가구 구매)에 과한 집착을 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갑자기 자괴감에 휩싸여 세상을 욕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


타지에서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지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얻기가 쉽지 않다. 사소한 순간들, 이를 테면 외식 메뉴를 정한다거나 할 때도 아이나 남편의 욕구를 우선시하게 되고, 어느새 그게 쌓여 삶의 전반적인 태도를 형성한다. 아이와 남편의 비슷한 성향 탓도 있고(2대 1 이니까), 내가 원하는 건 이곳에서 하기 힘든 탓도 있다(예를 들어 친한 친구와 보내는 자유시간 같은 것). 그런데 어느 순간 집이 내가 제일 통제력을 가진 무언가 이자 나의 욕구를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무대가 돼 버린 것이다. (집착의 대상은 물론 변화한다. 인테리어였다가 가족 여행이 되기도 한다.)


내 세계는 집에, 내 할 일은 돌봄과 수렵, 채집에 한정되어 있고. 해외 생활로 인한 소소한 불편함에 더해, 사소한 좌절이 반복될 때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해결책은? 나도 안다. 평소에 건강하게 욕구를 발산하며 사는 것. 글을 쓰며 이상하리만치 분통을 느꼈던 마음을 돌아보는 것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별것도 아닐 때가 많고 (그저 가구 아닌가) 그 이면에 숨겨진 움츠려 든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내 자리,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해 분투 중이고 그 걸 찾는 건 좀 더 나중에 일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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