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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Aug 21. 2020

길고 긴 장마가 끝난 뒤

길고  장마가 끝나고, 맑게  파란 하늘을 오랜만에 보았다. 장마가 끝난  보송보송함을 미처 즐길 세도 없이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이다. 그러나 베트남의  여름을 겪어본 나로서는 견딜만해서, 마른땅과 우산 없는  손이 감사하기만 하다.

오늘 오후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집에만 있자니 갑갑해져서 마스크를 끼고 챙이 넓은 모자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밖의 햇빛은 꽤나 강렬해 보였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생각보다 선선하다. 마침 해가 구름에 살짝 가려진 찰나.  

내가 향한 곳은 우리  근처, 넓은 들판. 어쩌다 보니 한국에 겨울에 들어와 , 여름을 나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곳은 없고 들판만 걷다 보니 어느 때보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불과    텅텅 비었던 논에 물을 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같던 가느다란 모를 심었는데, 어느새 짙은 초록의 벼가 우리 아이 키만큼이나 자라 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사람이든 식물이든 성장하는 생명체를 지켜보는  기쁜 일이다. 왠지 기특하기도 하고, 작은 생물이 가진 생명력이 내게도 조금은 전해지는  같다.


지난 봄, 모내기를 막 끝낸 들판의 모습이다.


이번 여름은  바쁘게 보냈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삶이 사실 바쁠  없는데, 이번 여름은  그랬다. 하노이가 아니라 한국이라서 가능했던 . 아직 한국에서 사회인으로 살았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귀띔으로 계획에 없었던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고, 누군가의 소개로 일을 하기도 했다.

내가  시험은 좁은 취업 문에 들어가기 위한  번째 관문이었는데 응시 접수를  때부터 확신이 없었다. 내가 합격을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막상 정말 혹시라도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직장 생활을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자꾸만 주저하게 되는 나에게 남편은 질타가 섞인 응원을 쏟았고. 결국 시험을 치렀다. 끝내고 나니 속이 얼마나 후련하던지! 중학교의 딱딱한 책상에 앉아 시험지를 푸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위해 무언가 도전하고, 결과를 떠나 어쨌든  과정을 마쳤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어 괜한 일을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시험을 보고 나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쉽지 않은 시간을 쪼개 도전한  자신이 기특할 정도.

시험 결과는 아직이고, 혹시 시험을 붙더라도  어려운 관문이 남아있지만 우선은 지금에 만족한다.  다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쁜 여름을 보내고 나니 하루빨리 하노이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져서 큰일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다시 기승이고, 하노이에는 언제   있을지 모르는 상황.  불안정함은 언제쯤 끝이 날까.

초록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쯤이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져야  텐데. 시간이 흘러 올여름을 뒤돌아 봤을 , 나는 어떤 시간을 추억하게 될까. 여러 가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나도 조금은 자랐다고 말할  있었으면 좋겠다.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와중에 내가 조금은 성장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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