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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Jan 07. 2021

한국을 떠나려니

이제 며칠 뒤면 한국을 떠난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울렁거린다. 설에 한국에 온 이후로 집에 못 돌아간 지 십 개월쯤. 집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떠나려니 발이 쉽게 안 떨어진다. 아직 한국에서의 시간을 정리할 마음의 준비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한국을 떠나는 건 언제나 힘들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 해에 여러 번씩 하는 일이었지만 매번 쉽지 않다. 이곳의 먹거리, 즐길거리, 그리고 가족의 사랑에 듬뿍 빠져있는 아이를 억지로 데려가는 일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고 내가 사랑하는 정든 거리, 익숙한 사람들, 영혼을 살 찌우는 음식들과 헤어지는 일이 그다음으로 힘들다. 언제나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언제일지 기약하기 힘들뿐더러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야 이삼 주이다 보니 항상 아쉽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몇 해전부터 자꾸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가면 발걸음을 돌리기 전 꼭 다시 한번 둘러본다. 구석구석. 눈에 담아두려고 노력한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서도 자리를 뜨기 전 꼭 한 번 더 먹어본다.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조금은 감정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은 그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뒤를 돌아보게 할 만큼,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는다. 올 한 해는 내겐 참 아이러니한 한 해였다. 집에 가지 못하고 남편과 떨어져 있는 대신 그리웠던 한국에서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작해 보는 용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부모님 댁에 지내면서 내가 그동안 무겁게 느꼈던 아내, 엄마의 굴레를 조금은 내려놓고 가끔은 부모님께 어리광도 피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동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부딪힐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뒤를 아무리 돌아본다 한들 과거는 흘러가기 마련이고, 또 새로운 현실이 찾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지나온 과거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추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마음을 먹기 위해, 다시 타지에서의 삶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얻기 위해 내게 10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그래서 분명, 하노이 특별입국을 신청했던 것 같은데 막상 며칠 앞으로 다가오니 떠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아쉬움, 속상함, 불안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꾸 서성거리며 짐을 챙기고 또 챙긴다. 마음 같아선 이 도시를, 부모님을, 우리 집을 낯선 나라로 가져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자꾸 무언가를 가방에 쑤셔 넣고 있다. 젊고 무모했던 나는 어쩌자고 이 길을 택했던 걸까. 조금은 지친, 몇 살 더 먹은 나에겐 이토록 힘든 일인데. 나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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