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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mominhanoi Jan 07. 2021

격리 중입니다

드디어 하노이

격리 호텔에서 보내는 여섯 번째 밤. 창문 옆에 위치한 작은 커피 테이블과 일인용 소파에 앉아 글을 쓴다. 열려있는 창문 틈 사이로 시원한 밤바람이 들어온다. 지쳐있던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하노이에 도착해서 이곳 호텔에서 보내는 여섯 번째 밤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일분 일초가 흐르는 걸 지켜보지 않아도 아이와 우당탕탕 소란을 피우다 보면 금세 밥시간이 다가오고 그러다 보면 저녁이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해서 쉽게 가는 건 아니다. 오늘은 특히나 힘든 하루였다. 사실 오늘 하루도 특별한 것 없는 하루였는데 그저 그런 사소한 이유 — 아이가 양치를 하기 싫어하고, 장난감이 잘 되지 않는다고 내게 화풀이를 하고, 바닥에 국을 엎지르고, 밥을 먹기 싫어하는 행동 — 으로 아이와 자꾸 부딪혔고 화를 냈고, 또 지쳐갔다. 그런 일들이야 거의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인데 오늘 유독 힘들게 느껴진 건 아마도 이 격리 생활에 점차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껏 생각보다 잘 견뎌내고 있다고 스스로 대견해했고 걱정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먼저 특별 입국한 사람들이 말하길 첫날 입국과정이 가장 힘들다고 했었는데 우리의 경우 그날 입국자 수가 많지 않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덕에 어려움 없이 지정된 격리 호텔로 입실하였고 시설도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아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고 걱정 없이 그저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 이 시간을 즐기겠노라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나 보다. 좁은 실내 공간에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하려니 몸과 마음이 지친다. 아이는 거의 매 순간 엄마의 관심을 요구하고, 읽겠다고 다짐한 책과 시청 목록에 담아둔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작지만 날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 마시기, 좋은 향 피우기, 반신욕 하기와 같은 일들은 방해를 받기 일쑤다. 혹은 아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침대 위를 방방 뛰는 걸 참아내면서 해야 하거나. 마음이 훅 지칠 땐 불안감과 걱정이 찾아든다. 나에 대한 의심. 더 이상 견딜 수 없을까봐,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까봐. 아이와 이 시간을 단 둘이 견뎌내야 하는데 남은 날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패닉이 찾아올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 땐, 어쩔 수 없다. 격리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내고 있으니 그럴만하다고 내 감정을 인정한다. 그리곤 심호흡. 후우후우. 다음엔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린다. 집에 가기 위해 지난 십 개월을 기다렸는데 이주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으리란 생각.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울렁거리던 마음이 가라앉고 다시 평소처럼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다시 다운되고 다시 평상심을 되찾길 여러 번 반복.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창문 옆에 앉아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날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 오늘 밤엔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잘 것이다.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차 한잔을 마시면서. 그리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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