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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령 Aug 29. 2024

죽음의 모습


자신이 사는 세상의 크기에 비례해서 자라는 것들이 있다는데.

크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문득 이제라도 지구 위를 아등바등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렇다고 뭐가 커지거나 한 것은 모르겠고 더 가벼워지고 헐거워진 것만은 느낄 수  있다.  기억력이나 총기는 섬뜩할 정도로 구멍이 숭숭 나고 있지만 그래서 태연하게 허술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완. 장이 꼬이는 긴장을 놓아버리니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뭉쳐지고 무거워지는 구름은 비로 내려 생명을 키우는 보람을 안겨 주겠지.

그래도 떠다니는 가벼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미루는 시간이 뭉쳐져 비가 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고 공간을 확보하여 가볍게 날아다닐 작정이다.

웃으며 묵직한 의미를 피하고 편하게 나이 드는 얼굴을 마주 보며 얼마나 더 걸을 수 있는지가 중대한 관심사가 되는 세월이 온다.

숭숭 많아지는 구멍은 하늘과 닮아서 결국에는 공기에 희석되는 날이 올터이다.

나는 죽음의 모습을 그렇게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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