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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령 Nov 25. 2024

푸른 동굴

그리고 푸른 눈물

죽기로 했다면.

살아야 했다. 잘 죽어가기로 했으므로 잘 살아야 했다. 마음과 몸이 흡족해지는 명제이자 길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던 어떤 날, 아마도 누구나 그런 날이 오면 잠깐 멈추어 볼 것이다. 웃음도 눈물도 욕심이나 책임도 내려놓고 멈추게 된다.

나는 그런 날 푸른 동굴로 갔다. 이제는 무너져버린 아주르 윈도의  수천 년 기억도 죽음을 맞이하는데 인간의 백 년도 못 되는 기억이 죽는 것은 당연하다.

뜨거운 세상에 살을 익히며 절벽을 올라 배를 기다린다.

다시 추락하는 계단에는 이미 죽은 기억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하얀 블라우스에 모자를 눌러쓴 나의 시간은 그 계단의 중간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파도가 너무 높아도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푸른 동굴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의 어디쯤에 길게 줄을 서던 시간이 끝을 보인다.

빛나며 짙게 그을린 사내의 배를 타고 파도 위에 앉는다.

수평선이 등을 밀면 노 젓는 사내가 소리친다.

다운 다운. 고슬고슬한 햇살과 달콤한 흙이 고향이었던 나무배의 바닥에 바짝 등을 대고 눕는다.

다른 차원의 입구는 입을 벌린 검은 바위. 블랙홀이었으나 웜홀이라 생각하며 나무배와 함께 삼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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