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이스탄불
이스탄불에서의 24시간. 나 여기로 와서 살아야 할까? 엄청난 끌림과 자유가 느껴진다. 일단 날씨가 완벽하다. 딱 해 질 녘에 탁심광장에 도착했는데 바람은 솔솔 불고 하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멋져 보이는 돔모양 건축물이(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탁심 광장 교회) 나를 반긴다. 숙소는 사진보다 더더더 귀엽고! 핑크색 벨벳 침구와 사랑스러운 벽화가 있고 개인 turkish bath도 있다. 체크인할 때 호텔 루프탑 바 쿠폰을 주시길래 바로 올라가 보니 오 마이갓! 물가와 도시가 한눈에 보인다. 명동처럼 복작거리는 이곳에서 8층만 올라가면 이런 뷰가 있다니 황홀하다. 빈속이지만 기쁨의 맥주 드링킹 세리머니~~~!!
시차 때문에 침대에 다이빙하듯 자고 새벽에 기도 알람 소리에 깬다. 창문을 열고 선선한 초가을 새벽의 바람을 만끽한다. 챙겨 온 스피커로 매일 아침 듣는 apple music의 spa playlist를 튼다. 이 playlist를 누구에게든 아주 추천한다! 마음이 차분에 지고 white noise로도 손색없다. 짐정리도 하고 어제부터 데워놓은 turkish bath에서 아주 뜨뜻하게 샤워도 한다. Turkish bath는 찬물과 뜨거운 물을 동시에 틀어 대리석 방이 따뜻해지는 그런 시스템인데 한국식 불한증막에 익숙한 나는 간에 기별도 안 되는 따뜻함이기는 하지만 터키 문화에서는 이렇게 목욕탕에서 이야기도 하고 쉬는 듯하다.
나는 뷔페는 싫어 하지만 조식 뷔페는 좋아한다! 치즈, 햄, 올리브가 각 9 종류 이상씩 있는 이 조식뷔페에서는 chaqueterie board for breakfast를 먹는다. 특히 이 깨범벅 스콘 같은 게 지인짜 맛있었다. 터키식 홍차인 차이는 너무 진해서 커피 하나 내려 먹고 요가 갈 준비! 그렇다 이번 여행 아무 계획 없이 왔지만 어느 요가원 갈지는 정해 놓고 왔다. 요가원 가는 길은 북적이는 중심부를 지나 골목골목을 들어가야 하는데 매우 유러피안 하나 뭔가 터키만의 특별한 갬성이 느껴지는 정취를 즐기며! 관광객 특! 아무 데서나 사진 찍으면서 신나게 걸어간다. 요가원은 빈티지 가게가 즐비한 아주 예쁜 골목에 통창으로 1층에 있다. 빤스 같은 반바지에 스포츠브라만 덜렁 입은 선생님이 나를 반긴다. 오늘 아침 요가 수업 워크인 한다고 했더니 오늘 아침 수업은 요가가 아니라 필라테스와 HIIT가 합쳐진 트레이닝 클래스란다. 오 마이갓. 항아리 바지에 나시 걸치고 왔는데. 쌤의 착장이 납득이 되기 시작. 그냥 갈까 고민했지만 쌤이 “this is Istanbuhl style”이라며 너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응원해 주셔서 도전을 해 보기로 한다. 부동의 하타수련에 집중해 온 나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피트니스 스타일의 페이스가 흥미롭다. 몸풀기로 견상에서 아기자세를 반복했는데 1분 안에 열 번 반복하는 식이다. 3년 동안 필라테스 레슨 받으며 매번 한 헌드렌드 복근운동도 하고 대학생때 해봤던 인터벌 트레이닝의 꽃 마운틴 클라이머도 했다. 사이드 플랭크, 팔 벌려 뛰기, 스퀏등을 반복하고 다이내믹한 수업 끝. 계속해서 “bravo”라며 칭찬하는 쌤의 에너지가 좋았다. Blood pumping 지대로 됐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요가원 근처 동네가 너무 이뻐서 기웃거리다가 빈티지 가게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찻잔 발견! 모난 것이라고 한 개 사면 두 개 주신단다! 하지만 가지고 있단 현금을 요가 수련비로 소진한 터라 못 샀다.. 다 카드 된다고 쓴 블로거 누구야? 요가원에도 빈티지 가게에도 카드 기계 없음.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고 숙소로 향한다. 후다닥 옷 갈아입고 카이막 먹으러 나선다. 도착하니 사장님이 “안녕하세요”라며 나를 “친구”라고 부른다. ㅎㅎ 유쾌하고 배가 많이 나온 사장님을 마주 보며 카이막 영접. 생크림 버터맛! 솔직히 황홀한 정도까지는 아닌데, 퓨어 지방을 베어 먹는 것은 언제나 indulgent 하다. 두툼한 삼겹살의 쫄깃한 비계를 베어 먹는 것이나, 한참 유행하던 앙버터 시리즈의 버터를 베어 먹을 때나, 이래도 되나 싶지만 입 안 가득 기름이 쫙 퍼지는 것은, 오 예. 여하튼 나는 다는 못 먹겠어서 깨작거리다 갈라타 탑으로 향한다.
대낮의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에선 바람이 솔솔 불고 습하지 않아 다닐만하다. 갈라타탑을 빙 둘러싼 입장 줄, 내 뒤에 서 계신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억양이 호주식으로 들려서 말 걸고 싶었다. 나 호주 가봤다고, 호주 어디서 왔냐고. 근데 입장할 때까지 아드님과 영상 통화를 하시는 바람에 말을 못 걸어서 아쉬웠다. 이 호주 아드님은 글쎄 자기 집 와이파이가 안 터져서 여행 가신 부모님 집에 와있단다. 그러니 엄마는 냉장고에 있는 모든 메뉴 아이템을 이야기해 주신다. “There’s pasta, and there’s also that chicken thing,” 아버님도 거든다, ”and lots of veggies, but the garlic could be bad.” 엄빠 마음은 만국 유니버셜.
갈라탑 꼭대기에서의 이스탄불은 아름답다. 붉은색 지붕과 파란색 물의 조화. 셀카도 몇 장 날리고, 열심히 인스타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흰색 히잡에 흰색 실크 상하의를 갖춰 입고, 풀매에 진주실로 꼬은 가방을 든 아주 깜찍한 이 친구는 나의 카디건을 손에서 뺏고 가방 지퍼를 메꾸라며 세심한 디렉팅을 한다. 사진을 찍어달라 했지만 영상이 더 좋다며 틱톡 스타일 영상을 찍어 준다. 귀여워!!!
이제 배가 고프다. 갈라탑 부터 물가까지는 여러 식당 발코니에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조금 조용한 곳에서 식사하고 싶어서 다시 요가원 골목으로 향한다. 일단 아까 보아놓은 찻잔부터 산다. 오늘 하루 두 번 만난 게 반가워서 주인아저씨에게 여러 가지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웃으며 포기한다. 점심은 “Suma”라는 미쉐린 빕구르망 식당에 간다. 서구적 영향을 많이 받은 힙한 그런 메뉴 구성이었다. 나는 세비체랑 크림치즈를 넣은 호박꽃 튀김을 시켰다. 많이 걸어서 에어컨 바람이 고팠지만 점심은 발코니에서만 서빙한다고 하여 야외 점심으로 유러피안처럼 느긋이 잘 먹었다.
오후에는 침대 속에서 남은 일정 호텔 예약 하고 꼼지락 거리다가 숙소 앞 백종원 맛집에서 저녁 간단히 먹고 하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