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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ism Oct 19. 2024

네 꿈은 뭐야?

좋은 질문도 언제 듣느냐에 따라 공포가 된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들 한다. 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입학하자마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희망진로를 묻는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니?”이런 아름답고 철학적인 질문이면 좋겠으나, 현실은 “어떤 전공을 하고 싶니?”에 훨씬 가깝다. 대학입시를 위한 진학지도가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뭘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아이들이 일단 대학교 전공들을 (사실상 이름만 보고) 살펴야 하는 것이다. 전자공학, 반도체학과, 빅데이터 관련 학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글로벌비즈니스학과 등등..... 물론 묻는 선생들도 그들의 답이 뭣도 모르고 한 답이라는 것, 그러니 당연히 자기 확신과는 거리가 멀며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모든 것을 이해할 테니 일단 뭐라도 답하길 기대한다. "뭐라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다’ 혹은 ‘모르겠다’는 답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그런 답은 마치 답이 없는 혹은 미래가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열등감을 주고 저절로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없거나 모를 수 있는 배짱 있는 학생이 많지 않다.

수많은 보통 학생들이 답을 내려고 고민한다. ‘이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 아니니 하나 정해 봐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애써 곱씹으면서 나름의 고심 끝에 겨우 하나를 골라 더듬거리며 답한다. 힘겹게 골랐는데, 그게 뭐든 일단 괜찮다고 마냥 포용적일 것 같던 선생님들은 답을 듣자마자 돌변한다. “어떤 계기로 희망하게 되었니?”, “그 분야의 관련 도서는 무엇을 읽었니? 네가 따로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무엇이니? 그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네가 쌓아온 그동안 너의 식견을 좀 보여주지 않을래?” 등의 질문이 폭격처럼 따른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쌓아서 생활기록부에 적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희망하게 되었는지는 어떻게 어떻게 쥐어짜서 소설 쓰듯 감동포인트를 덧붙여 말할 수 있다 쳐도, 그다음 질문들을 쉽게 답하긴 어렵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꿈을 찾아가면 참 다행인데, 오히려 멀어져 간다. 아이들은 ‘모르겠는 자신’이 정답 혹은 모범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고 느끼며,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상태로도 언제든 자기 희망 진로에 대해서 떠들어야 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수행평가는 요즘 상당히 개별화되어 있어서 거의 모든 과목에서 ‘자신의 희망진로’와의 접점을 다루도록 요구한다. 예를 들면 국어과목에서는 "진로독서 탐구에세이 쓰기"를 한다.  희망진로 관련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이 배우고 느낀 점을 적어 내는 것이다. 영어 과목에서는 '자신의 롤모델 영어스피치'를 한다. 진로 희망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 대하여 영어로 스피치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아이들은 확실하지 않은 장래희망으로 자기 자신을, 고교생활을 가스라이팅하면서 시간을 쌓는다. 어쩌다 희망 진로가 된 그것이 생활기록부 안에서 점차 그럴듯해질수록 불안감도 커진다.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면 어떡하지? 생활기록부는 다 A로 채워왔는데 B를 하고 싶어지면 어쩌지 하는 번뇌에 휩싸인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이 아프다.



꿈을 어떻게 찾는지, 어디에서 찾는지 그 무엇도 가르치지 않고 각자의 답을 내오라는 시대. 진로교육도 학창 시절도 학생 스스로에게 내맡기는 학교. 이래도 될까.

내가 학생일 때엔, 그냥 “공부”를 하라고 했다. 공부를 죽어라 하다 보면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이 정해지는 구조였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미대 입시 실패 후 1년간 다시 인문계로 전향하여 공부한 후에 수능점수를 받아 들고 입시 상담을 가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네 성적으로 그건 무리라고, 성균관대를 가고 싶으면 철학과가 안정권이니  철학과를 가야 한다고 말하던 시대였다. 철학이라고!??? 그게 너무 싫었던  나는 어차피 성적에 맞춰  좋아하지도 않는 과에 가야만 한다면, 대학간판을 택하자 싶어 결국 연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철학이나 신학이나....ㅋㅋㅋ) 서울대를 갈 수 있다니 갑자기 미술도 시작하던 사람이었던 걸 기억해 보자.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대학간판이 중요했던 시대였으니까...


학생의 희망진로 같은 게 가볍게 무시되던 때, 원하는 과에 가고 싶다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던 그 시절이 차라리  더 나았다고 말하면 학생 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 진학지도를 찬동하는 옛날 사람인 걸까. 적어도 그땐 그 구조 때문 에라도 아이들이 살아가며 삶의 기초소양이 되는 고교시절에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16살부터 희망 진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가길 강요받고 있는 많은 보통의 아이들이 자기의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생각보다 많이 아파한다.


모르는 게 너무도 당연한 나이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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