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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May 16. 2023

러브레터

  좁고 가파른 카페 계단을 밟고 올라올 때면 항상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마음속에 일렁인다. 너를 볼 수 있을거란 기대, 어쩌면 너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오늘은 연차를 쓰고 한낮에 퇴근했다. 오랜만에 네가 보고 싶었다. 대낮에도 막히는 강변북로를 따라 차를 끌고 네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평일 정오라 손님이 한명도 없는 한산한 카페에서 너는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을 찾아내 동그마니 엎드려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운 좋게 너를 만나서 기뻤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시키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엎드려있던 네가 우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기꺼이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살짝 쥔 주먹을 너의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너는 고맙게도 내 주먹을 차갑고 촉촉한 너의 코로 톡 치며 인사를 해주었다. 덤으로 너는 조그만 네 머리를 내 다리에 가볍게 몇 번 박으며 반가워했다. 또다시 기뻤다.

  내가 쓰다듬는 손길에 너는 너의 온 몸을 내맡긴 채 발라당 누웠다. 정수리부터 척추뼈를 따라 꼬리 부근까지 털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너는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바르르 떨었다. 너를 쓸어내릴 때마다 털이 벚꽃잎처럼 날렸다. 털은 너의 꼬리에도 뭍고, 내 카디건 소매에도 뭍었다. 사이좋게 너의 털을 나누어 가진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너를 나에게 처음 소개해준 친구 H가 느즈막이 카페에 들어선다. H는 익숙하게 너를 실컷 쓰다듬은 뒤에야 자리에 편하게 앉는다. 두 명의 인간과 놀아준 너는 물로 목을 축이고 산양유로 입가심을 한다. 사장님은 부쩍 살이 내린 너를 위해 특별히 열량이 높은 산양유를 급여한다고 했다. 산양유를 양껏 마신 후에 뒤돌아 선 너는, 미간에 우유를 방울방울 뭍히고 있다.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회색빛이 도는 너의 털은 햇빛을 받았을 때, 오묘한 회갈색을 띈다. 아주 고풍스럽고 귀해 보인다. 나를 빤히 쳐다볼 때, 에메랄드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너의 눈은 바다를 담은 것 같다. 핸드크림을 바르고 코 가까이에 손을 들이밀면 핥아주는 너의 혀는 가볍게 까슬하고 부드럽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지 가볍게 내 손을 물어버리는 너의 송곳니는 쌀알같이 뽀얗고 날렵하다. 겨울마다 토실하게 털이 올라오는 너의 목과 가슴은 항상 따끈해서 ‘너도 정말 나처럼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그저 가까이 가서 머리를 부비기만 해도 모두가 너를 좋아하고 쓰다듬어 줄 거란 그 확신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누구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너의 온 몸을 사람에게 내맡길 거라는 태도. 그 생각의 과정이 그 조그만 머릿속에 일어나고 있다는게 너무도 깜찍하다. 너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싫어하는 것 백 개를 피할 때보다 사랑하는 것 하나를 마주했을 때,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다고 느낀다. 너를 보면서 역시 세상은 살만 하다고 생각한다.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안락한 내 공간에 있을 때보다, 내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너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안도와 평온을 느낀다. 그간 잔잔하게 불어 닥친 어렵고 괴로운 수많은 일들은 너의 쌀알 같은 송곳니에 분해되고, 해체되어 무용해진다. 내 불안과 우울은 너의 말랑한 발바닥에 녹아내린다.

  나는 너를 스쳐지나가는 한낱 손님일 뿐이지만, 너의 인생이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 차오르길. 어떤 위험이나 위협도 너의 앞날에는 없길. 그저 너 자체로 존재하길 간절하게 바란다.

사랑하는 너에게,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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