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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 Jul 22. 2022

한국에 왜 가는 거야

뉴욕에서 한국을 간다고 하면 휴가를 가냐고 묻는다.


한국에 왔다. 30년도 더 된 아파트의 구조는 한국인 평균 신장에 맞춰 지은 건지 뉴욕의 아파트처럼 발꿈치를 들어 올릴 일이 없다. 새벽 4시에 무언가를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내가 먹을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부침용 두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김이랑 먹었다. '만두라도 데워먹지 그래.' 고기 들었잖아. 엄마가 한숨을 푹 셨다. '너 그렇게 극단적이어서 누가 데려가?' 그럼 시집가려고 고기 먹어? '엄청 좋은 남자가 만약에 고기 먹으면 어떡하려고?' 사위 왔다고 닭 잡을 일 없어서 좋지 않아? (근데 사위부터 생길 일이 없을 것 같아.) 


1년에 두세 달 보는 부모님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딸 역할을 다시 학습한다. 잘은 몰라도 부모님도 비슷한 느낌 아닐까? 60대에 접어든 이후 그들은 대부분 과거에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얘기했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관성'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그들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비싸거나 새로운 것을 낯설어했고, 그 모습을 나는 꼬박꼬박 속상해했다. 


며칠 동안 노인들 보행에 적합하다는 슬리퍼를 알아보고 사 왔는데 몇 년째 신는 낡고 딱딱한 슬리퍼와 달리 발바닥의 부위별 충격흡수를 고려한 곡선의 슬리퍼가 낯설다고 신지 않으신다. 내가 한 번 내린 드립 커피에 뜨거운 물을 다시 부어 먹는다. '나는 옅은 게 좋아, 진하면 속 쓰려.' 그럼 새 거에 물을 더 부으면 되잖아. 속상함은 곧 심술로 변질된다. 


누군가에게 맞추는 일에 반드시 이해가 필요하진 않다. 그들의 행동과 동기가 잘 이해되지 않지만, 그게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비싼 것이 꼭 모두에게 좋은 것도 아니고, 돈을 들이는 게 그들에게 잘해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머리로 안다. (어차피 그들은 평생 나보다 부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번번이 그들이 수박의 빨간 부분까지만 먹는 사람들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편리해서 좋다는데, 나는 그게 불편했다. 정확히는 내가 피곤한 인간인 게 불편했다. 상권이 크게 발달하지 않고 가족단위의 인구가 많이 사는 동네에는 맘에 드는 커피 원두를 파는 곳과 합리적인 가격의 오트 밀유를 구할 수 없었다. 과일은 대책 없이 비싸고 재활용도 안 되는 물질로 과대 포장되어있다. 외식비용과 서비스업은 터무니없이 저렴했는데, 동물성 식품을 소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의미 없는 편리함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언제 자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가게 영업시간이 길다. 그럼에도 가게 주인들은 늘 마음이 불편해질 정도로 친절하다.  


나는 이 불편한 마음을 자주 가는 커피 가게의 사장님께 아무도 없는 한적한 오전 시간에 토로했다. 커피를 리터 단위로 파는 데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다들 힘들어서 그럴 거예요. 


순간 평일 오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저따위 대사를 친 내가 잠시 부끄러워졌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세 달 살다가는 주제에, 네가 개천을 재방문한 드래곤이냐. 


내가 나고 자란 곳을 까먹지 않으려고 한국에 온다. 부모님은 내가 8살 때 이사 온 집에서 아직도 살고 계신다. 더불어 아래층과 위층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그들은 15년 넘게 여름 방학을 맞이한 나를 영원히 졸업하지 않는 대학생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10대 때 사귄 친구들은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첫 직장 다닐 때 (그리고 여전히) 맨날 울상이더니, 그렇게 번 돈으로 15년 넘게 방학을 맞이하는 나에게 밥을 사주려고 한다. 


간혹 내가 열여섯 살 때 한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한다. 코수술을 하고 냉동 닭가슴살을 주문하고 야근을 하고 다음날 일 리터짜리 커피를 들고 출근하고, 맛집 줄을 서면서 직장의 스트레스를 해소했을까.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며 tv 프로그램에 나와 시골에 일주일간 갇혀서 모르는 이성에게 나의 배우자로서의 매력 자본을 어필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엄마 다음 주에 사위 데려올게, 치킨 시켜놔. 공무원 합격엔 에듀윌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 애썼을까. 모두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만든 김밥을 좋아했다. 햄, 계란, 게맛살을 빼고, 콩고기, 명이나물, 두부를 넣은. 뉴욕이었으면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을 오전 시간을, 엄마와 김밥을 우물거리는데 쓴다. 누군가에게 '산다 (live)'의 뜻을 알려줄 때 내가 그릴 풍경. 살러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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