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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 Feb 18. 2023

오늘은 아주 많이 걸어야 했다

2.17.23 일기 

마음이 어수선할 때 걷는 습관은 20대 초반에 생겼다. 당시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먼 곳으로 여행을 가서 무조건 걸었다. 중년의 나이에 경유까지 해서 딸의 송장을 치우러 오게 할 수는 없었다. 그 감정을 활용했다. 당시 나는 6개월 교환학생으로 런던에 갔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떨어지자 마음껏 우울했다. 자주 감기에 걸렸고 해가 질 때까지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12시간 14시간씩 버스를 타고 낯선 유럽의 도시로 가서 숙소를 나흘간 잡고 하루에 한 방향씩 동서남북으로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걸었다. 그 당시의 '여행'은 사진이 없고 지명이 없다. 숙소는 가장 저렴한 곳을 선택했으므로 성별 구분 없이 10명 이상이 쓰는 기숙사형 호스텔에서 잤다. 내가 그 시절 기억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방의 테라스 난간에 기대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을 때 같은 방에 머무르던 이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뛰어내리기 적합한 곳은 아니네.' 나의 건조한 대답에 그는 '그러게, 애매하게 다치기만 하겠어'하며 웃었다. 그 도시도, 호스텔도 기억이 안나지만 그의 반응에 대해 느낀 고마움은 생생하다. 


어쩌다 관광지의 절경을 지나가게 되면 친절한 행인들이 사진을 찍어줄까, 하고 물었다. 거절했다. 당시 나의 삐딱하고 치기 어린 마음에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현재의 불행을 잠시나마 과거에 기대 잊게 해주는 보루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기록 같은 게 없어도 어떻게든 과거에 기대 현재를 잊을 줄 아는 모양이다. 추억을 복원하는 데 구체성을 더해줄 자료가 있냐 없냐의 차이일 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의구심이 가는 많은 추억들이 너덜너덜할 때 떠올랐다. 오히려 구체적인 자료가 없으니 미화가 수월하다. 


오늘 나는 아주 많이 걸어야 했다. 오늘 떠오른 기억은 대학교 3학년 때 시카고 남쪽 동네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을 때였다. 처음 이사를 오기 전부터 사람들은 위험하니 남쪽으로 가지 말라고 해서 3년이나 지나서야 처음 남쪽 동네로 갔다. 나는 누가 봐도 동네 사람이 아닌 게 티가 났다. 나 혼자 아시아인이었고 전방 100미터, 아니 전방 1km에 있는 모두가 흑인이었다 (혹은 그렇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실제로는 나의 과잉 경계의식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버스를 잘못된 방향으로 타서 황급히 내리고 한참을 걸었다. 학교 안에서 청소를 하던 사람이 나와서 어디 가냐고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학교 건물 안에서 있다가, 굳이 나에게 길을 알려주러 나왔다 (정말 누가 봐도 나는 길을 잃은 외부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우여곡절 도착해서 한참 버스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울고 있는 중년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못 본 척했다. 그분은 내 바로 앞까지 오더니 어딜 가냐고 했다. 내가 행선지를 얘기하자 그분은 자기가 그곳을 알지만 본인은 그전에 내린다고 하더니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서야 그분은 자신이 내가 내릴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미리 우려한 것을 알았다. 조금 얘기를 해보니 그분은 울고 있는 게 아니라, 바람이 너무 시려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며 심심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제봉사, 이름,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버스가 왔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분은 내 앞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디서 내린다고 얘기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었고 그분은 자기 내린다며 다시 한번 남은 승객들에게 나를 부탁했다. 내가 내릴 곳이 되자 버스 기사분과 많은 승객들이 어수선을 떨며 내릴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내가 3년간 놓쳤을 온정에 대해 간간히 생각했다. 글을 쓰다가 내가 왜 이 당시의 기억을 떠올랐는지 알게 됐다. 나의 인류애가 바닥을 쳐서, 인류애 에피소드를 끌어다 쓰고 있구나. 과거의 나는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긴 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아 분하다. 그들이 10년이 지나고 그 이후의 미래의 나를 살리고 있다고 말할 기회도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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