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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공간 Mar 01. 2022

퐁네프의 자유

난 정말로 자유로워진 걸까


‘알렉스,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어. 나를 잊어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퐁네프 다리를 떠나갔던 미셸은 크리스마스 이브, 알렉스와 함께 다리로 돌아왔다. 온전한 사랑으로 몸을 던지기 위해서.  


‘퐁네프의 연인들’ 은 프랑스 파리, 특히 퐁네프 다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랑과 자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 사랑이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자의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도 없이 마음껏 분출해 내는 그들만의 소통 방법으로.  


나는 퐁네프 다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떠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혹은 나와 함께 센 강에 몸을 던질 사람 따위는 그곳에 없는데도. 자유로운 몸짓으로 거닐던 그 거리 하나가 그리워서. 



‘하은아 너 엄청 자유로워 보여’ 


프랑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던 오랜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리를 방문했던 날이 있다. 런던에서 처음으로 유로스타를 타고,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그곳에 친구를 만난다는 좋은 핑계를 더해 갔던 날. 머릿속에는 그동안 봐왔던 프랑스 영화들이 일렁거렸다. 그중에서도 ‘몽상가들’ 속 매튜, 테오, 이자벨이 손을 잡고 루브르 박물관을 뛰어다니는 모습과 ‘퐁네프의 연인들’ 속 퐁네프 다리 뒤로 피어오르는 불꽃놀이를 배경 삼아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던 알렉스와 미셸의 몸짓이 선명했다. 사회의 이단아라고 여겨지는 그들이 만끽하는 자유가 내가 선망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지식한 사회가 용납하지 못하는 것들, 또한 한국 사회에 남겨진 나의 가족이 용납할 수 없는 금지된 일들을 하는 것.  


그런데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이 전보다 더 자유로워 보인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은 자유를 갈망하기만 했지 제대로 가져본 적은 없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메달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미 자유라는 결승선 너머 어딘가에 서 있다고 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정말로 자유로워진 걸까?’ 


큰 숨을 들이마시게 되었을 만큼 아름다웠던 에펠 타워 앞에서 퐁네프 다리까지 걸어가는 길에 내가 소망하던 것들을 떠올려봤다. 내가 무턱대고 자유의 확증이라고 믿었던 술과 담배 같은 것들을 뺀 나머지의 것들. 어쩌면 외부적으로 보이는 자유가 아니라 진짜 구속 없는 몸짓을 주었던 것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억압 없는 자유를 꿈꿔왔었다. 아빠의 통제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적인 책임감 가운데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어린 시절이 억울 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놀아도 됐는데, 조금 더 행복해도 됐는데, 가정 환경에 억눌린 채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살았던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성인이 되었을 때도 결국은 변함없이 똑같은 나 자신이 서 있어서.  


그래서인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되자마자, 나는 런던에 우두커니 서서 자유만을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속박 없이, 나에게 욕하는 사람 하나 없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볼 수 있는 나라에 왔다는 안정감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뜬금없이 새벽 3시에 템즈 강가에 나가서 사진을 찍고 들어와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고, 늦은 오후 시간에 어기적 거리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도 찜찜한 구석이 하나 없었다. 밤새 그림을 그려도, 하루 종일 공원 바닥에 누워있어도, 충동적인 계획으로 하루 이틀쯤은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없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구실을 쥐어 짜낼 필요조차도 없는, 그러니까 완전한 독립. 내가 선택하고 누리는 것들은 오직 나에게만 영향을 미쳤고, 딱히 결과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니 누군가에게 실수의 이유를 구구절절 짜내며 자학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더 자극적이고 더 개방된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미 자유로운 사람이었구나. 


긴 시간을 걸었던 탓에 종아리가 당기기 시작했을 때 쯤 퐁네프 다리 구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끽했다. 나는 이미 자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지금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어쩌면 오래전 건너뛰었던 어린 시절을 다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착한 딸이 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멋진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나를 억누르고 살아왔기에 누리지 못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되어 간간이 소식을 전하며 관계를 이어오던 친구와 나. 성인이 된 우리가 여전히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그리고 이제야 자유로워진 둘이 되어 파리를 거닐었던 날이 잊히지가 않는다. 나에게는 내가 온전한 자유로 몸을 던졌음을 인정받았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면 허름하기 짝이 없는 퐁네프 다리는 센 강 물결과 함께 햇살을 받으며 빛이 났고, 그곳에 선 나는 꽤나 낭만 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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