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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Dec 20. 2022

아들을 위해 진상 부모가 되었다

기쁨이는 훌륭한 농구선수가 아니다. 키가 작고 과체중에 몸이 무거워 빨리 뛰질 못한다. 

학기 초, 학교 팀 선발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동내 클럽 농구팀에서 농구를 하기로 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곳에서 기본 기술을 배우고 게임 시즌을 한 게임 뛰어 봤지만 2년이란 시간은 그 또래 아이들을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동안 농구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떨어져 나가고 그나마 계속 관심을 가지거나 남 보다 조금 더 잘하는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나이가 든 만큼 연습시간도 늦은 시간대로 바꿨고 나는 새로 태어난 아기 때문에 예전처럼 연습은 못 따라다니고 대신 아빠가 기쁨이를 데리고 주중에 연습을 따라 가 주고 토요일 오전엔 경기에 대리고 다닌다.  기쁨이는 연습이 없는 날에도 매일 집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고 슈팅 연습을 한다. 아빠는 농구를 배워 본 적은 없지만 기쁨이를 위해 유튜브에서 농구 강습을 보고 그걸 따라서 기쁨이에게 연습을 시키곤 한다. 게임이 있는 토요일 아침엔 6시 반에 아이를 깨워 몸을 풀고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YMCA  가서 한 시간 동안 연습을 시키고 아침을 사 먹이고 게임에 간다. 비록 실력은 없더라도 단 한 번도 연습이나 경기에 빠지거나 늦는 일이 없이 성실하게 농구에 임한다.


지난번 게임에 나도 한번 같이 가 보니 다른 주전 멤버들이 게임의 8-90%를 뛰는 동안 기쁨이는 코트에 나가서 뛰는 시간이 다 합해서 3-4분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번은 주전 멤버가 물 마시는 동안 3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를 집어넣었다가 그 아이가 물을 다 마시자 기쁨이를 다시 밴치로 앉혔다. 아빠는 기쁨이 실력이 안 좋으니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그날은 이번 시즌 중 가장 많이 뛴 날이라나. 누나는 너는 뛰지도 않아서 땀도 안 났으니 물을 마실 필요도 샤워할 필요도 없겠다며 농담을 던지고 기쁨이는 계면쩍은 미소를 던졌다.


그러다 하루는 연습을 마치고 아빠와 아들이 들어오는데 아빠가 씩씩거리며 화가 잔뜩 나 들어왔다. 평소 때 보다 일찍 온 것도 이상한데 화 까지 나 있는 모습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연습 처음 30분간 다른 아이들은 연습을 시키고 기쁨이는 잠시 잠깐 연습을 시키곤 또 가서 밴치에 앉아 있으라 하고 또 다른 아이들을 연습시키다 기쁨이 순서가 되면 아주 잠깐만 연습시키고 밴치에 가서 앉아있으라 하고 그걸 반복하길래 시간을 재어보니 코트에서 있는 시간이 30분 중 6분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게임에선 실력차가 있으니 팀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연습에서조차 제외되는 모습에 아빠가 화를 못 이기고 아이를 연습 중간에 빼 내서 대신 YMCA에서 땀이 나게 연습을 시키고 돌아왔다고 한다. 


시계를 보고 연습이 끝나고 정리할 시간까지 기다린 후 팀의 매인 코치와 학부모 중 코치로 봉사하는 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아들을 오늘 연습에 참여시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경기에선 실력이 안돼 많이 뛰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냐. 이미 실력 격차가 있는데 연습도 안 시키면 경기에선 더 못할 건데 차라리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준이 안돼 그렇다면 한쪽 구석에서 드리블이나 슈팅 연습이라도 시켰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아이 아빠가 연습에 20분 운전해서 가고 연습이 끝나면 20분을 다시 운전해서 집에 돌아온다. 우리 아이가 실력이 없는 건 알지만 연습에서 만큼은 제외되지 말고 똑같이 참여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집에서도 따로 연습하며 노력하고 있다. 다음 연습엔 다른 태도로 아이들을 대했으면 좋겠고 그러지 않을 시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불만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고.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연습이 끝난 부모 중 한 명이 공을 놔두고 갔는데 누가 챙겼냐는 문자를 단체 톡방에 하자 바로 메인 코치가 자기가 챙겼다며 답이 온다. 

또 몇 분을 기다리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 단톡방에 어째서 내가 보낸 문자엔 답을 안 주냐며 기다리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자 운전 중이니 기다리란다.


기다리고... 아기를 재우고 기다리고... 큰 애들이 잠자리에 들고 또 기다리고...

드디어 밤 10시 40분이 되어서야 장문의 문자가 왔다.


단톡방에서 자신을 불러내는 것과 자신의 수업에 아이 아빠가 아이를 빼서 데리고 나가는 자신을 무시하는 무례한 모습에 기분이 나쁘고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자신을 신고한다고 지금 협박하는 거냐며.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 다른 부모들도 자신과 같은 입장이라나. 그날 연습은 게임을 앞두고 작전을 짜서 연습하는 중에 7명밖에 연습에 안 왔기에 첫 번째 그룹에게 설명을 하고 그동안 기쁨이는 밴치에 앉아서 보고 들으며 배웠고 코트에 나와서 바로 설명한 것을 알아들어했기에 더 이상 기쁨이를 연습시키는 건 팀 연습시간을 까먹는 일이었다고. 

그리고 바로 이어 단톡방에 문자가 올라왔다. 자신은 편애하는 아이들이 없고 팀을 이기기 위해 노력할 뿐이며 학부모들과의 대화엔 항상 열려있으니 제발 여기 단톡방에서 자기를 불러내지 말고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라고. 


진지한 사과를 바랐고 정정을 바랐었는데 이렇게 나오다니.

이젠 전쟁이다.


밤늦게 단톡방에 불만을 할 순 없으니 다음 날 아침이 되는 걸 기다렸다 아침이 돼서 바로 단톡방에 내가 처음부터 단톡방에 항의를 했냐? 9시에 문자를 보냈는데 운전 중이라 밤 10시 40분이 되어 문자가 오는 거면 도대체 어디 살길래 그러냐? 체타누가 사냐?(만약 서울이었다면 인천 사냐? 는 식으로 비아냥 거렸다) 그리고 코치가 그렇게 당당하다는데 우리 아이와 같이 밴치에 앉아 있었던 그 학생의 부모가 보기에도 그 상황이 정당한 거였는지 물었다. 


그리고 개인 문자로 매인 코치에게 나는 농구는 책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자전거처럼 실제 연습을 통해 배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부모들과 똑같은 돈을 내고 이 프로그램에 내 아이를 보냈고, 팀 환경에서 농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보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학부모 코치가 개인 문자로 나에게 어제 상황을 설명해 주며 사과를 했다. 시나리오에 따른 작전 연습을 하는 날이라 설명이 길었고 먼저 첫 번째 그룹에게 가르치고 그러는 동안 기쁨이와 다른 학생은 듣고 보면서 익히고 그들이 코트로 들어와 연습했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그리고 나중에 매인 코치가 그들에게 드리블이나 슈팅을 연습시킬 계획이었다고. 다음번 연습이나 시합엔 적당한 시간을 할애해 참가시키겠다고. 

내가 듣고 싶은 사과가 바로 이런 거였다. 솔직 담백한 사과. 

내 입장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 앞으로 연습에 우리 잘해보자 하고 답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매인 코치는 다시 단톡방에 자신은 우리 아이들 수업 이후에 이어 바로 이어 고등학생 농구 수업이 있고 지금 대학생이라 기말고사 기간이라 바쁘고 가족 이슈도 있어 바쁘다. 다시 말하지만 제발 개인적인 불만을 단톡방에 하지 말라. 자신은 언제든 들을 준비가 돼 있으니 개인적으로 연락하라. 너와 너 남편과 말싸움할 마음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은 편애하는 아이들 없이 팀의 우승을 위해서 일한다. 공평한 시간을 주고 연습시켰고 너만 빼고 모든 부모들이 그걸 증명할 수 있다며 문자를 했다.


나는 단톡방에다 대고 다시 코치는 이런 변명을 할 것이면 먼저 나한테 "개인적으로"연락해 양해와 이해를 구해야 했다. 당신은 기억나는 내 아이의 플레이를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냐? 다른 부모들이 경기 후 파이팅 하는 문자를 보내는 주고받는 동안 나는 그럴 수 없었던 게 내 아이가 뛰는 시간이 없었기에 플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조차 없었다. 팀의 승리를 말하기 전에 먼저 팀의 일원으로 대해 달라고 문자를 남겼다. 


바로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연락해 상황을 이야기하자 몇 살 무슨 그룹인지 물어보며 Fair amount of time을 약속받았다. 


나와 매인 코치가 단톡방에서 서로 문자 공격을 해 대는 동안 매인 멤버들의 부모는 코치를 지지하는 문자를 계속 보내왔다. 나만 진상 부모가 돼서 팀 정신을 해치며 흙탕물을 일으키는 듯.


오후가 되기 전 매인 코치는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금요일 밤 하루 더 연습 시간을 잡은 것을 알려주었고 누가 참가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제일 마지막에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기쁨이와 같이 밴치에 계속 앉아 있었던 학생의 부모가 자신의 아이도 참석할 수 있다고 알려주며 자기 아들은 이번에 처음 농구를 하는 거라 룰도 잘 모르고 실력이 형편없지만 실력에 상관없이 모두 정당한 시간 동안 연습과 경기에 참여하며 즐겁게 농구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남겨 주셨다.


금요일 밤 연습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온 아빠가 그날은 코치 가모든 애들이 숨이 턱턱 차도록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아이들을 돌려 연습을 시켰다고 말해줬다. 


손흥민 아버지가 뉴 퀴즈에 나오셨다. 

기본을 가르쳐야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강한 슈팅을 가르치고 경기에서 이기라고 하고 압박을 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도 소문으로 손감독이 축구인들 사이엔 아들을 쥐고 흔드는 진상이었단 것을 들었다. 하지만 가끔 훌륭한 축구인들도 그 안에 큰 뜻을 못 알아 들었으리라 믿는다. 


여기 농구 프로그램에 주전 선수급이라 해 봤자 다들 우리 아이처럼 학교 농구팀 선출에 떨어진 아이들이다. 겨우 만으로 10살 11살. 다리 가랑이 사이에 공을 넣고 빠져나가게 드리블을 하고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전 경기에서 드리블을 하다 워킹 바이올레이션에 걸려 중요한 시기에 공을 뺏겨 팀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게 허다하고 자기 실력만 믿고 자기 볼을 만들려고 패스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한 공격을 하거나 공을 들고 있다가 상대편에게 공을 뺏기는 게 일수다.  


기본을 할 때 기본을 안 하고 게임과 우승만을 달려가는 건  한국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진상 부모란 소리를 들어도 내 아이를 위해선 기본을 하고 싶다. 남이 우리 아이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을 땐 못하는 영어라도 언제든지 따지고 내 아이의 편을 들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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