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그리고 첫째날
지난주부터 몸이 이상했다. 피곤한 건 학기 초라고 해도 면역이 무너진 듯했다. 10년 열심히 달리다 학습연구년이 되자마자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아프기 시작했다. 그냥 별일 아니라 생각했었다. 학기 초에 고생하고 몸이 안 좋을 때면 그래왔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달랐던 건 딱 한 가지 목의 이물감이었다. 본래도 편도선염을 주기적으로 앓을 정도로 목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묵직한 통증이 아닌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기분이 싸늘했다.
아니겠지 생각했다. 백신도 3차까지 맞았고 딱히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거리 두기 수칙을 어겼다고 생각들만 한 일도 하지 않았다. 나의 감염은 곧 우리 반 아이들과 우리 가족들의 안전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였다. 그럼에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목의 유리가 박힌 듯한 통증이 열이 나 기침은 없어도 정상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이내 찾은 병원에서는 끊임없이 펼쳐진 줄이 있었다. 모두 신속 항원 검사를 받기 위해 서있던 것이었다.
신속 항원 검사는 자가 검진 키트를 전문가가 하는 것이다. 즉, 자가 검진 키트를 제대로 했음에도 음성이 나왔다면 이 역시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이에 비해 PCR 검사는 유전자를 확대하여 진단하는 것으로 결과는 늦더라도 초기에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일요일, 소아과에서 소견서를 받아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출근이 싫었지만 코로나에 감염되는 건 더 싫었다. 오늘 아침에 길에 가던 아저씨가 뱉은 가래침이 계속 거슬렸다.
검사를 받고 나는 안방에 격리되었다. 아니길 바랐고,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살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아이들이 내 격리실을 꾸며놨고 약간의 휴가를 받는 기분도 들었다. 적어도 그날 저녁까지는 그랬다. 다행히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이라 격리된 공간이 마치 원룸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노트북과 책 두어 권이면 시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평화가 그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새벽이 되자 검사 결과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백신을 맞고 났을 때보다 더 강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두껍게 덮은 이불로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고 타이레놀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었다. 기침에 나의 내장들을 갈기갈기 찢어졌고 체온계의 숫자는 점점 높아져갔다. '아 이게 코로나구나'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7시가 조금 넘자 양성 판정 문자가 왔고 아내와 아이들의 등교도 중지되었고 바로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우리 집은 그렇게 멈춰버렸다.
학교에 확진 사실을 안내했고, 학부모들에게도 알렸다. 컨디션은 점점 떨어져갔고 나의 하루는 그렇게 사라졌다. 넷플릭스의 영화도 시답잖은 유튜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독서는커녕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휴가의 일종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후회될 새도 없었다. 걱정은 가족들이랑 우리 반 아이들의 검사 결과였다. 대 확산시기에 내가 누구한테 어디서 어떻게 옮겼는지 보다 내가 주변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루가 짧고도 길었다. 순간순간 잠시 졸았던 것 외에 잠을 이루지도 못 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감기의 증상들이 한 번에 찾아왔고, 신기할 정도로 옮겨 다녔다. 목이 아프다가 머리가 아팠고, 열이 나는 듯하다가 근육통이 왔다. 아빠랑 자고 싶다는 첫째 아들이랑 아빠가 집에 있는 데 왜 방에서 나오지 못하냐고 이해하지 못하는 둘째, 그리고 휴식을 뺏긴 채 모든 것은 오롯이 도맡아 하는 아내와 나와의 거리는 그렇게 방문 하나의 두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