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오늘은 격리 3일차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족들은 다 음성으로 결과가 나왔다. 아직 잠복기 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제자들은 몰라도 가족들과는 가까이에서 먹고 자고 했음에도 전파가 안된 것이 신기했다. 아마 전파력이 생기기 전에 검사를 진행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대견스럽게 여겨본다. 참 다행이다. 학교에서도 별다른 연락이 없다.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아프지 않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하루종일 갇혀있었다. 사실 배달도 되고 컴퓨터도 있고 침대도 있어 아늑하고자 하면 한 없이 편할 수도 있다. 누구하나 말을 걸지도 내게 일을 시키지도 않는다. 병원이라고 하면 간호사라도 들락거리겠지만 그럴 이도 없다. 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전화는 받지 않아도 되고, 카톡도 즉답을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급할 일도 없었고 미뤄둘 일도 없었다. 내가 없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고 그렇게 나는 작은 공간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몸이 아프니 자꾸 쳐지게 되고 뭔가를 하고자하는 의지가 사라졌다. 잦은 기침과 두통에 무엇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혼자만의 생활을 해야할 시간이 더 많다. 예전에는 만약에 격리가 된다면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할까 로또가 당첨된 마냥 이런 저런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주변인의 확진 소식에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라는 둥의 상투적인 위로를 부러움을 가득담아 하기도 했다. 당해보니 뭔가 잘 못 되었다.
단절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돌아갔다. 나는 유람선에서 떨어져 바다위에 자리 잡은 어린아이의 모자였고 세상은 나를 그 자리에 둔 채 멀리 떠나가버린 배였다. 모터의 흐름에 넘실 거리던 물결이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지만 난 역시 그자리였다. 때로는 캄캄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마셔봐야 새장이었고, 카톡속에 나누는 대화는 사람인지 AI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우울했다.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침대에 몸을 뉘운 채 스마트폰만 하염없이 들여다 보다 내 자신이 한심해 스마트폰을 끄고는 노트북을 봤다. 노트북이 지겨워 다시 스마트폰을 봤다.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하다 방문 앞에 놓인 아내의 식사를 받아 먹었다. 아들들이 문밖에서 싸워도, 아내의 한숨소리가 깊게 들려와도, 막내 아들이 왜 안나오냐고 물어봐도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빨리 일주일이 지나가길 바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방바닥에는 미쳐 닦지 못한 그릇들이 쌓여갔다. 오한을 핑계로 열지 않은 문에 방 공기는 점점 탁해졌다. 밤새 흘린 땀에 옷에서는 쉰내가 났다. 뭘 얼마나 하겠다고 쌓아 놓은 책들은 그저 짐일 뿐이었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연결된 충전기는 링거줄마냥 나를 칭칭 감아버렸다. 내 품에서 내 곁을 지키던 15년지기 곰돌이 애착인형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너 괜찮은 거 맞지?' 난 정말 괜찮은 게 맞나.
어제가 정점일 줄 알았던 각종 통증이 오늘이 정점이 되었다. 내일은 정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진흙탕에 빠진 멧돼지마냥 침대위를 정신없이 뒹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