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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똘짱 Mar 27. 2022

어쩌다 코로나 사흘

격리된지 4일째다. 어제보다는 살만 한 것 같다. 정점은 지났는 지 통증이 익숙해졌는 지 모르겠다. 달라졌다고 하면 밖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는 것, 오전이면 아내와 아이들이 등교를 해서 아무도 없다는 것, 나에게 약이 생겼다는 것 정도이다. 앞으로 목금토 3일만 더 있으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라면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다. 종종 영상 통화를 하곤 하지만 작은 스마트폰 속에 내 모습이 너무 아파보여서 목소리만 전달하곤 한다. 

세상이 다시 조용해졌다. 라디오소리 처럼 들리던 아이들의 소리가 없어졌다. 어제도 언제 잤는 지 모르겠다. 저녁 약을 먹고 잠시 졸았다가 아이들 싸우는 소리에 잠시 깬 것이 잠을 놓쳐버렸다. 스마트폰을 만지작 하다가 유튜브에 이름 모를 영화리뷰를 보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아이들과 아내가 출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가 다시 일어나 보니 10시다. 창 밖으로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가 조용한 세상이 멈춰진 건 아니라고 알려준다.

화장실에 갔다가 잠시 거울을 보았다. 씻고 제대로 말리지 않고 누워서 떡지고 엉클어진 머리, 가뜩이나 안 좋은 피부에 듬성듬성 수염이 자리 잡으니 더 초췌해보였다. 열 때문인지 잠 때문이지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아무 표정없는 얼굴을 아무 표정없이 바라 보았다. 이를 가족들이 본다면 걱정이 더 하겠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화장실 앞에 있던 체중계에 잠시 몸을 올려보았다. 그저 먹고 누워서 기침한 것 밖에 없는데 5키로 정도가 줄어들었다. 

격리 생활에도 루틴이 필요했다. 이러다가는 코로나에 몸 뿐만 아니라 정신도 감염될 것 같다. 아내의 드레스 룸에 달린 거울로 나를 비춰보았다. 어제 잠결 보았던 정신나간 영화속 한 장면이 내게 용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정의의 사자가 체력을 기르 듯,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듯, 스승을 잃은 제작 복수의 칼날을 갈며 훈련하듯 나도 모를 정신나간 투지가 불타오르는 순간이었다. 

난 코로나항체를 지닌 신인류로 진화하는 중이다. 통증이 심해서도 아니고 약이 독해서 정신줄을 놓은 건 아니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정당성이 필요했고 '진화'라는 정신나간 소리는 충분히 정당했다. 모든 진화에는 인고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수많은 고통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진화의 단계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엎어진김에 쉬라더니 심하게 엎어졌나보다. 나도 모를 웃음이 나왔다. 

방꾸에 들어갔다. (방꾸미기=방꾸) 마스크를 쓰고 닫겨진 문을 열었다. 닐암스트롱의 첫 발처럼 사일만에 거실에 발을 딪혔다. 해저보물을 탐색하는 잠수부처럼 행여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빠져나올까봐 숨을 꾹 참았다. 미션은 수세미와 컴퓨터, 그리고 책 몇권과 아령이었다. 머리속에서 몇번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나가자 마자 주방에 들렸다가 창고에서 책을 꺼내...'  , 결과는 성공이었다. 심지어 오는 길에 식탁위에 바나나도 하나 집어왔다. 

청소부터 시작한다. 화장실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틀고 설거지를 한다. 이제서야 퐁퐁과 샴푸의 차이를 깨닳았지만 왠지 뜨거운물이 소독도 될 것 같았다. 먹성이 좋아 잔반이 없는 건 정말 다행이다. 베란다에 빨래건조기를 세우고 흐린 날씨를 뚫고 올 태양빛에 소독될 그릇을 기대해 본다. 빨래는 그릇이 다 마르면 해야지 미뤄두고는 방을 정리 한다. 어지럽던 화장대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올렸다. 이제 무의미하게 누워서 넷플릭스에 갇혀있지 않으리라.

시간표를 짜본다. 대충 내가 할 것들을 떠올렸다.  아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가벼운 운동, 독서, 밀린 글쓰기, 돌아가면 해야할 업무 구상, 게임, 영화감상, 화장실 청소, 옷장 정리, 베란다 화분관리, 창밖구경, 일기쓰기, 멍때리기...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다. 옷을 챙겨입고 창문 부터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콧구멍을 타고 찬바람이 깊게 들어오자 참았던 기침이 쏟아진다. 따뜻한 커피에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상상을 하며 잠시 고통을 즐겨본다.

노트북을 켰다. 손가락을 비벼 옮긴 내 커서는 넷플릭스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힘차게 나아갔다. 하얗고 빈 종이에 갸녀린 커서만이 나 여기있소라고 외치며 깜박인다. 오랜만에 침대가 아닌 의자에 앉아 본다. 누워있으면 허리가 좋아질 줄 알았는 데 그렇지만은 않다. 굳어버린 허리를 요리 조리 움직이며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본다. 부드럽고 차가운 키보드의 자판이 손가락을 붙잡는다. 이내 난 요란하게 깜박이는 커서를 딱 네글자 만큼 오른쪽으로 밀어낸다.

"해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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