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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라 Dec 21. 2022

누구를 위하여 산타는 달리나

너희의 졸업과 우리의 은퇴, 이것이 최종 목표



달력의 마지막 장,

12월에는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살포시 덮을 수 있을 수 있는 설렘이 있다


이날만을 위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울면 안 된다기에, 흐르는 눈물도 참아온 그 인내의 시간 끝에는 달콤한 선물이 있다     

피부색도, 성별도 따지지 않고 울지만 않으면 선물을 주는 세상 가장 통 큰 어른, 산타할아버지는 전 세계인의 유전자에 박혀있기라도 하듯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너무나 예쁘지만 바닥에 떨어진 반짝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애증의 오너먼트


크리스마스이브,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큰 양말을 꺼내어놓고 다시 한번 산타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빌고, 기필코 오늘 밤에는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는 반대로 한없이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잠들었던 일곱 살의 나는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어른이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12월이 됐으니 트리를 설치하자고 난리법석인 아이들에게 집이 엉망이 되고, 설치하고 치우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기는 하냐고 투덜대며 창고에서 트리용품을 꺼내면서 나 홀로 슬그머니 미소 짓기도 하며, 올해 받고 싶은 선물을 알아내 장바구니에 담으며 장난 아닌(아이가 셋) 지출에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몇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대 사기극에 동참해왔다.

그 옛날 크리스마스 아침, 트리 앞에서 포장된 선물을 뜯으며 환호하는 나를 보며 부모님이 느꼈을 (올해도 안 들켰다는) 짜릿함과 뿌듯함을 그대로 나도 느끼며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올해 12세, 10세, 8세이다.

여느 초딩들과 마찬가지로 유튜브 게임방송을 좋아하고,

아이브 언니들이 너무 좋다며 나도 모르던 ‘원영이 언니의 딸기 논란’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억울함을 토해내며 악플러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속세에 아주 푹 빠져있는 (슬프긴 하지만) 적당히 순수한 초등학생이다


유행하는 밈을 따라 하며, 제법 엄마에게 말대꾸를 하는 이 아이들도 돌연 순한 양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단어는 우습게도 산타할아버지다

산타할아버지를 빌미로 협박을 일삼는 악랄한 엄마에게 아이들은 진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오히려 밀당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근데 이상하다? 왜 산타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을 엄마가 장바구니에 담아?”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랑 우리 집에 있는 포장지랑 똑같은 건 왜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질문을 해대는 아이들에게 대체 언제쯤 진실을 말해주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차에 사건은 터져버렸다     


“산타는 진짜 있어”

“아니야 내 친구 지유가 그랬는데 엄마 아빠가 산타라고했어”

“아니야~”     


우습게도 산타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쪽이 언니, 엄마 아빠가 산타라고 이야기하는 쪽이 동생이었다. 이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는데 불똥이 나에게도 튀어왔다     


“엄마 이제 사실대로 말해줘요 산타할아버지 진짜 있어요?”

“엄마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잖아요!”          


그래.. 이제 너희도 진실을 알 때가 되었지

그동안 너희의 행동들을 봤을 때 이미 선물이 엄마 아빠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데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 같았어, 오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해주겠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실, 엄마랑 아빠가 산타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는 막내 옆에서 별안간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앙!!!! 엄마 나빠!!!!”


둘째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명료했다     


으아아아악!!!! 엄마는 동심을 파괴했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너의 행동으로 봐서는) 더 이상 남아있는 동심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번개 같은 속도로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아니야 아니야, 산타가 없다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산타랑 같다는 거야!!!!”

“산타 진짜 있지?”

“그래!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엄마 아빠가 너희 정보를 받아서 전달해주기도 하고 뭐 그래서 우리도 산타라는 뜻이지(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울음을 그치며 샐쭉 웃는 널 보니.. 하.... 너는 그냥 속아주는 척하는구나

애초에 내 장바구니에서 내 카드로 결제되어 내가 포장해서 너의 손에 도착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저 너는 아직 동심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나오기 싫어서 산타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그랬구나 싶다     





트리 아래에 모여있던 선물상자는 상상만 해도 두근거림 그 자체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물론 그때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타할아버지가 사실은 엄마 아빠이고, 나는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부모님께서도 마찬가지셨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보지도, 이야기해주지도 않았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졸업했고 ‘산타할아버지’ 역시 은퇴를 하게 되었다

나만의 속도에 맞춰 아이에서 소녀로 물 흐르듯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억지로 물길을 바꾸거나 고랑을 파내지 않고 부모님은 날 기다려 주셨다           




‘아이’ 졸업과 ‘산타할아버지’ 은퇴 시기의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



유치원 강당에 모두를 모아놓고, 집에서 봤던 포장지로 잘 포장된 선물상자를 건네주는 선글라스 끼고 있던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산타도 아닐뿐더러 할아버지가 아닌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된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산타가 사실은 엄마 아빠라는 것들을 이미 아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고 싶은 그 작고 귀여운 동심은 , 깊은 새벽에 하늘을 나는 루돌프와 함께 우리 집을 다녀갈 그를 위해 예쁘게 카드를 만들어 머리맡에 두고 잠들 때의 설렘과 , 아침에 제대로 뜨지 못한 눈으로 선물 포장지를 벗길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조금 더 오랫동안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반짝거리는 동심과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을 더 마음껏, 아이스럽게,  온몸 가득 채워나가며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짝퉁 산타)의 마지막 임무인 것이 분명하다



원하는 만큼 가득 채워 스스로 졸업할 때까지,

엄마 아빠 산타여!  열심히 클릭을 하고, 결제를 하자.

            

너희의 졸업과 우리의 은퇴를 위하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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