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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08. 2024

무엇이 진실인가

에르난 디아스 - <트러스트>

베트남 나트랑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전공의 없이 버텨온 시간이 6개월이 되어 가면서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단순히 몸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지난 몇 달간 이어져 온 의료 사태로 나의 멘탈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증원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막으려는 의사들의 행동은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되었고,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들의 자존심은 거리낌 없이 짓밟혔다.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나는 몇 개월씩 대기 중인 대장암 환자들을 버리고 나갈 수 있을 만큼 모질지 못했다. 수술이 몇 개월씩 밀려 있거나 말거나 대장암 환자는 계속 생겼다. 새로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우리 병원에서 전부 소화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우리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이 힘드니 다른 병원으로 가시라고 설득하는 것 또한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나는 쉬어야만 했다. 올해 휴가지를 휴양지 리조트로 정한 것도 쉬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아이가 생긴 이후 여름휴가는 항상 아이들 위주였다. 어디로 가야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을지가 휴가지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트랑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때마침 구름이 많을 때 방문하여 찌는 듯하지 않고 물놀이하기에 적당히 더웠고,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스파는 찌든 내 몸을 3일 내내 어루만져 주었다. (새벽 귀국 비행기의 피로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그리고, 3박 5일의 짧은 휴식을 함께 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고른 책이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이다.





2023년 퓰리처상 수상작. 버락 오바마의 추천 도서.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버락 오바마의 이름값에 이끌려 고르기는 했지만,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대공황 시기 미국이 배경이라는 것 외에는 내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책이 같은 이야기를 네 가지 다른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것도, 그런 구성을 라쇼몽식 서사라고 한다는 것도 모른 채 읽다 보니 파트 1에서 파트 2로 넘어가면서 내용이 갑자기 붕 뜨기 시작했다. 파트 1의 소설과 파트 2의 자서전이 얼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한데 등장인물도 다르고 내용도 조금씩 달라서 도무지 어떻게 연결 지어서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서전을 굳이 미완성본으로 내버려 둔 이유는 더더욱 감을 잡기 어려웠다. 역시 휴양지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들고 왔어야 한다고 슬슬 후회가 될 때쯤 파트 3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제서야 책의 구성이 눈에 보이고 굳이 이런 방식으로 퍼즐처럼 이야기를 전개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니 깊은 여운이 남았다. 퓰리쳐상 수상작에는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트러스트>는 1920년대 미국 금융 시장에서 전설적인 성공을 거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누가 화자가 되느냐에 따라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다르게 전개된다. 제삼자가 쓴 소설, 남편의 자서전, 대필 작가의 회고록, 아내의 일기를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깊은 진실을 알지 못한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들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일까. 신문,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처해 있는 현실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된다.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이 과학적으로 산출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런저런 근거들을 가져다가 붙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의료는 하나하나 설명하고 이해시키기가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것이다. 얽힌 실타래에서 사실(혹은 사실처럼 보이는 거짓)을 조각조각 떼어내어 원하는 방향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정말로 거짓 없는 진실인지를 일반인들이 판단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정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먹힌다. 사람이란 무릇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을 믿기 마련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6개월간의 의료 대란을 겪으면서 이정말 맞는 방향인지 의심하기 시작하는 국민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만들어내고 있는 허점 투성이의 이야기는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나는 여전히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 병원을 지키고 있다.




'사실(fact)'과 '진실(truth)'은 다르다. 사실들을 모은다고 해서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을 단편적으로 모으는 행위 자체에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 해석(interpretation)일 뿐이다. 누군가의 해석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골라내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진실은 늘 깊숙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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