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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by Zero

장강명 작가는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지만 아무래도 기자 출신이다 보니 르포르타주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당선, 합격, 계급>을 읽고 나서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먼저 온 미래>는 더 굉장하다.


장강명 작가는 <먼저 온 미래>에서, 알파고의 등장 이후 급격하게 변화해 온 바둑계를 통해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예측해 보고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까지 바둑만큼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 영역이었다. 바둑돌을 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그것을 전부 계산한다는 것은 컴퓨터라 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깝기에 컴퓨터가 인간의 직관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바둑을 예술이라 칭하는 것, 기사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것, 판세와 기세가 중요하다는 것 등등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둑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알파고의 등장은 '바둑'이라는 업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맞붙기 전 인터뷰에서 '질 자신이 없다'라고 할 때까지만 해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을 이긴 마지막 인류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바둑 인공지능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더 이상 인간의 포석은 정석이 되지 못하며, 인공지능을 배워 흉내 내지 못하는 프로 바둑 기사는 승리할 수 없게 되었다. 누가 누가 인공지능을 더 잘 따라 하느냐로 승부가 나는 바둑이 더 이상 예술일 수 있을까? 프로 바둑 기사들은 인공지능이 가져오게 될 '미래'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겪어 왔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결국은 마주하게 될 가까운 미래다.




'인공지능이 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고민은, 실제로 그 분야에서 쓸 만한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된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그 분야의 규칙 자체가 바뀌며, 그때부터 해야 하는 고민은 '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된다. 어쨌든 경쟁은 다른 사람과 하는 거니까.


챗GPT가 출시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3년간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비단 논문 쓰기 뿐이겠냐만, 내가 대학 교수로서 연구자의 삶을 살다 보니 논문 쓰는 데 있어서의 변화가 가장 크다. 자료 찾기부터 시작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정리해서 영어로 논문을 쓰고 다듬어 제출을 하고 리비전이 오면 고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생성형 LLM이 없으면 논문 작업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논문 한 편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체감상 십 분의 일 정도로 줄어든 느낌이다. 내가 기획하고 쓴 논문이니 내 논문은 분명 맞는데 예전만큼의 고생이 담기질 않는 것 같은 생각에 왠지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하여튼 뭔가 묘하다. 겨우 3년 만에 이만큼의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르게 변할까. 이제 데이터만 있으면 AI가 알아서 구상하고 새로운 논문을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사람은 단지 '환자 치료'를 통해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역할만 하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아니, 실은 '의료 데이터의 생산' 역시도 인공지능이 담당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다. 이미 영상 판독은 물론 진단과 치료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은 의료의 모든 영역에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다. 바둑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게 되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것이고 (사실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때가 되면 인간 의사는 단순히 '책임을 질 누군가'가 되어 인공지능의 판단을 확인만 해 주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의료 현장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공존하고 있다. 분업하고 있다'라고 말해도 될까? '인간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수준 높은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라고 말해도 될까? '인공지능이 결코 줄 수 없는 의료 현장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인간 의사가 제공하고 있다'라고 말해도 될까? 그보다는 '의료 현장에서 인간이 여전히 필요하기는 하지만 보조 인력의 자리로 물러났고 권위도 추락했다'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진술 아닐까?


외과 의사로서, '수술'이라는 영역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최후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른 해부 구조, 매 순간순간 이루어져야 하는 정확한 판단,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를 인공지능과 로봇이 따라잡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용 로봇을 이용한 수술이 보편화되면서 높은 화질의 안정적인 영상을 얻기가 수월해졌고, 이를 이용하여 수술을 자동화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병원 K 교수님 스타트업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연구들이 외과 의사를 편하게 만들어 줄지, 아니면 우리 밥줄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일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봐서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언제 갑자기 굉장한 수술용 인공지능이 알파고처럼 느닷없이 나타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사이 바둑계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사람이 인공지능보다 '적어도' 수술은 더 잘해야 할 텐데.

인공지능이 나보다 수술까지 더 잘하게 되면, 나는 대체 뭘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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