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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녀 Sep 06. 2022

친절을 다시 생각해보며

그림책<친절한 행동>

<친절한 행동>

남편은 동생이 있는데,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던 시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하겠다고 통보를 해 왔다. 부모의 결혼 승낙을 받을 나이는 아니지만, 가족들 모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다문화 가족이 되는 건가.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가족들 대부분이 시동생의 결혼을 반대했다.  말은 어떻게 하냐는 걱정과 당시에는 국제결혼에 대한 수많은 소문들이 날뛰던 때였다. ‘영주권만 받으면 도망을 친다더라. 남편의 재산을 빼돌린다더라.’ 등등 무성한 이야기. 가족 모임은 시동생이 결혼을 포기하도록 권유 내지는 강제하는 것으로 매번 결론지어졌다. 가족들과 시동생의 고성이 몇 차례 오간 후 가족들은 더 이상 반대를 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결혼에 대한 입장이 강경했다고 할까.


‘새삼 왜 다 늦은 결혼인가, 그리고 다문화라니....’ 평소 열린 생각으로 산다고 나름 자부했던 나조차 말도 통하지 않을 동서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았다. 시동생은 결혼 준비도 거의 혼자 진행했다.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만났고, 페이스톡이나 전화로 매일 통화를 하는 사이였다는 것은 늦게 알게 되었다. 시어머님의 경우는 그 많은 혼처를 마다하고 난데없이 베트남 여자라니 속이 탄다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지만, 아들의 굳은 마음에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뭐 내 동생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을 어떻게 할 수 있나’ 하는 마음과 ‘결혼 안 하면 안 되나, 연기하면 안 되나’ 하는 마음도 감추고 있었다. 가족들조차 차츰 결혼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동생이, 아들이 하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하고, 몇 개월 후 베트남 동서는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말을 배웠다고 하는데, 말은 서툴고 얼굴도 새까맣고, 키도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데도 대부분의 가족들은 어떤 게 성이고 이름인지 알아 듣지 못했다. 처음에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말을 걸고 했지만 처음 호기심은 금방 시들해졌다. 매운 것을 잘 못 먹고 파를 특히 싫어했는데, 그것을 억지로 먹으려 한다거나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식사 분위기도 있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보니 결혼이나 육아 상담 등을 해주는 사이트에 이런 고민이 올라왔다.

“예비 남편의 형이 알고 보니 베트남 여성과 국제 결혼을 했어요. 이 결혼 할까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는데, 댓글을 보니 대부분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유는 매매혼이며, 여성을 사고 파는 집안이라면 제대로 된 집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갑자기 어린 두 아들들이 떠올랐다. 아들이 결혼할 때도 이런 문제들이 불거질 것인가....하는 때 이른 염려.


도티엔은 한국 온 3개월 후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 가족들이 나올 수 없었던 코로나 시국이었던 터라 간병은 오로지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나는 병원에 한번 문병을 갔고, 잠시 교대 시간 동안 병실을 지켰다. 작고 여린 몸. 하지만 간호사가 가족이냐고 물어보자, 내 대답은 “아...예”라고 여전히 어쩡쩡했다. 아마 길에서 만나도 난 여전히 어색한 웃음을 띨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적 있었는데 반가워하는 도티엔과 달리 나는 놀랐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한국의 어느 동서가 금방 친해지겠냐 말이다.


베트남은 자국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할 특히 심사를 강화한다. 한국인과 결혼한 후 죽음을 맞이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부인의 영주권 신청이 소극적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들로 결혼이 늦어진 남성들과 여성의 연령 차이는 기본 20년 이상. 시동생과 도티엔의 차이도 20년. 우리라면 도둑 장가니하니 하며 호들갑 떨 일이다.


재클린 우드슨 가 글을 쓰고 E. B. 루이스가 그림을 그린 <친절한 행동>은 선생님의 첫 인사로 시작한다.

“소개할 친구가 있어요. 새로 온 친구 마야입니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야는 우리 앞에 서 있다. 마야는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아이들은 마야와 놀기 싫다. 그래 아이들은 놀기 싫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면 문제는 달라진다. 마야는 아이들과 놀고 싶어하지만, 아이들 눈에는 마야의 낡은 옷과 장난감이 보일 뿐이다.


‘친절’은 백화점이나 마트의 표어만은 아니다. 어릴 때 나는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친절하라고 배웠다. 길을 가는 노인을 발견하면 짐을 들어드리거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은 노인을 발견하면 자리를 양보하거나, 길을 묻는 사람에게는 길을 알려주는 것.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것 등등. 그런데 그 친절도 사람을 가리게 되는 때가 많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특히 더 친절하고, 덜 하기도 한다. 베트남 동서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늘 설왕설래였다. 집안일을 배워야 한다고 그녀에게만 일을 시킨다거나.... 물론 그러면서 나의 일은 줄었다. 아니 도티엔 스스로 설거지를 자처할 때는 싫다. 일을 마치고 와서 급하게 밥을 먹으며, 저녁 설거지를 하는 모습에 ‘이건 아니다’ 싶다. 매번 말리지만 그녀도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고집을 부린다. “바보같이”라고 말해준다.


가족들이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거북하다. 남편도 동생의 아내를 그냥 이름으로 불러 내가 등짝을 때린다. 친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만약 한국인이었다면 친한 거 보다 예의를 더 차리지 않았을까. 가족들이 그녀에게 이러쿵 저러쿵 할 때마다 나의 태도는 중립이다. 굳이 끼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림책 속의 재클린처럼. 아이는 마야의 마음을 알지만, 굳이 그 눈길을 피하는 이유는 무얼까. “마야가 나를 볼 때마다 난 눈을 돌려 창밖에 쌓인 눈을 바라보았어요”

그렇지만 때론 같은 여자로서 울컥할 때도 있다.


동서가 함께 있으면 오랫동안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말을 좀 빨리 배웠으면 했는데, 그럭저럭 의사소통은 되고 있다. 우리는 베트남어를 이해하거나 하지 않고, 당연히 그녀가 말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녀가 만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버리기 일쑤인데, 한국 음식에 입맛을 맞추기를 바란다. 한국을 빨리 알기를 바란다.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잘 모른다. 그녀가 살아왔던 고향도 잘 모른다. 알아야 하는 것과 알려고 하는 노력은 때론 다르다. 알아야 더 사랑할 수 있는데 말이다. 친절한 행동은 친절함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친절은 물건을 팔기 위해 판매전략만은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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