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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un 15. 2023

저 소파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물새의 깊은 속을 그 누가 알려마는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었다. 소년 만화의 주인공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나이가 좋았다. 딱 그 상태로 시간이 멈추어 주기를 바랐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자유로운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고 싶다는 또래의 소망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소년이고 싶어. '아직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설익은 풋풋함을 설레는 마음으로 잡아 두었던 거라고,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바람과 상관없이 나는 어른이 되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말. 아니, 아직은 결말이라고 하기엔 이르려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른이 되었다.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두둑이 저녁을 먹었고, 아무래도 살이 찌는 것 같아 어플로 30분을 맞추어 놓고 중랑천변을 쉴 새 없이 달렸고, 씻고 누워서 누군가 재미있다고 했던 한물 간 드라마를 넷플릭스로 꾹꾹 눌러보고 있는 여느 때와 같은 저녁이었다. 자유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유롭다. 아무도 내가 무얼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떠한 것도 나의 자유의지를 꺾을 수 없다. 꺾으려 들지도 않는다. 나를 거스르는 것은 그 무엇도 없는 나는 완벽한 자유의 상태다. 이러한 생활이 꽤 지속되어 왔는데, 왜 이제야 그러한 기분에 사로잡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 캡쳐본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꽤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호기심에 나도 그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반백년을 살아온 중년의 연기자가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컨셉이었다. 유복하게 자랐다고 알려져서 그런지 더욱 구김살 없이 당당해 보이는 그가 말했다. 20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여유로울 때가 더 낫지. 그래도 지금의 경험과 관록을 가진 채로 다시 젊음을 얻게 된다면 더 좋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또 이렇게 답했다. 시대가 다른데, 그때 경험이랑 다르지. 굳이 그냥 고생하고 싶지 않아. 20대는 누구나 다 힘들어. 누군가 내게도 물은 적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가고 싶냐고. 별 뜻 없는 질문에 나는 또 진지하게 생각했다. 언제가 적당할까. 군대는 다녀온 뒤어야 할 텐데. 취업도 한 다음이면 좋겠고. 그럼 연애는? 결혼은? 따지고 보니 적당한 시점을 찾기 어려웠다. 20대에는 너무 많은 것이 미지의 영역이었다. 불확실성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감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20대는 누구나 다 힘들어. 그래서 참인 명제가 된다. 많은 것이 얼추 정해진 지금, 현실에 안주한다고 비난하면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두들기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평온하다. 안정감이 흘러넘친다. 먹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사다 먹고, 운동하고 싶을 때 나가서 달리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저녁을 보장받았다. 나는 왜 어른이 되기를 원치 않아 했던가.


  눈을 감고 다시 그 설렘을 생각한다. 20대의 나는, 깊은 새벽 검은 방 안에서. 얼굴 가득 파란 불빛을 받아내며 치열하게도 기록했었다. 남의 글, 내가 쓰고 싶지 않은 문장을 억지로 토해 내느라 이젠 다른 것을 쓸 여력이 없어져 버렸다고. 어차피 재능은 내 것이 아니니 이룰 수 없는 것 앞에 서성이는 추태를 보이지 말자고. 오랜 기간 어떠한 것도 적어내지 않은 변명은 그러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만큼 문장을 적어 내는 일도 쉽지가 않다. 그때는 왜 그렇게 적을 것이 많았었는지. 그때는 왜 내가 적은 문장을 다시 읽으며 그리도 설레었는지. 소파에 누워 다시 한번,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를 나는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외로운 물새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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