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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아저씨 Apr 19. 2020

4-2 내가 구충제를 먹는 이유, 토비.

반.창.고 - 반갑다창문밖고양이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 토비는

밥을 엄청 먹었다.


배가 볼록 튀어나오도록 먹고도

밥그릇을 다시 채워 놓으면

쉬지 않고 달려들어

빈 그릇으로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적정량 외에 

밥을 더 이상 주지 않으면 되는 것.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밥그릇에 

항상 사료를 수북이 채워놓았다.



길고양이.

배고픔에 대한 불안.


토비에게

먹고 또 먹어도

언제나 이곳엔 먹을 것이 넘쳐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녀석이 밥그릇에

붙어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폭식은 줄었으나

토비가 먹는 양에 비해

체중이 늘지 않았다.





"기생충입니다. 2달 정도 고생한다 생각하시고..."


동물병원 의사는 토비를 살피며 말했다.


"길고양이들은 오염된 물을 먹을 수밖에 없어서 

기생충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아요."


"모두 없애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지금 약은 성충을 죽이는 것이고요, 

 성충이 낳은 알이 2주 후에 부화하니까

 계속 약을 먹어야 해요. 

 부화한 기생충들이 다시 알을 낳고... 

 계속 반복이니까

 지속적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토비가 약을 먹고 나서 며칠 후

납작한 줄처럼 생긴 기생충들이 

항문으로 죽어서 나오기 시작했다.


녀석은

엉덩이를 땅에 끌고 다니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뒹굴며

하얀 거품을 토해내기도 했다.


두 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치료.


끊임없이 녀석의 주위를 살펴야 했고,

수시로 바닥을 닦고,

다른 아이들에게 옮지 않도록

소독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이불 빨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오는 기생충들.


반복의 반복.

손발은 점점 무뎌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과 발이

힘들어지면,

몹쓸 꾀가 나 

몸을 아프게 하는 법.  


병이 아니면서도

몸이 아파오는 건,

손과 발이

저 멀리 있는 붙어있는

머릿속 생각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가슴에 달라붙은

마음을 흔들기 때문.


흔들거리면서 자라나는

마음속 그림자.




불치병도 아니고

꾸준히 치료를 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과 다르게

서서히 시들어가는 마음.


내 마음은

가슴이 뛸 때마다

자리를 바꿔 앉았다.


첫째 용감이와 

둘째 꽃님이에게도 

기생충이 옮아간다면 아이들 건강은?


녀석을 집으로 들인 게 잘한 일일까?


언제쯤 이 피곤한 일과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이곳저곳 숨어있다가

우글우글 모여드는 그림자들.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핑계들.


마음속에 자라나는 그림자는

토비의 기생충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줄어들었다 늘었다를 반복할 뿐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내는 말이 없었다.


꾹 다문 입. 

걷어올린 두 팔.


녀석의 토사물에

기생충이 같이 섞여 나와도

멈추지 않는 손.


그럴 때마다

눈물이 흥건해진 토비를 안고 

쪼그려 앉아

토닥토닥 거리는

아내.


그 모습에 기대어

토비도

나도

몇 달을 더 버텨 나갔다.





"오, 이제 깨끗해졌네요."


동물 병원 의사의 말을 듣던 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토비의 눈을 바라보며

긴 숨을 한참 동안 내쉬었다.


아내는 

토비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만세를 불렀다.


토비에 대한 미안함.

아내에 대한 고마움.


아내 덕분에

용감이도 꽃님이도

그리고 나도

몹쓸 기생충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아내는

토비를 비롯한 우리 식구 모두에게

시기에 맞춰 

구충제를 챙겨 먹인다.


때마다 아내가 주는 

커다란 알약을 목으로 넘기면서

나는 생각한다.


구충제를 먹는 나만의 이유.


그 날들을 생각하며

내 마음속 기생충을 죽이는 것.




어쩌면 그래서 

별스럽게 보일지도 모르는 구충제를 

매 년마다 지인들에게 선물하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효능이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같은 효과가 일어나서

가족으로 뭉친 누군가와 

다시 흩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

토비 이야기 계속

https://brunch.co.kr/@banchang-g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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