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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r Kwak Jun 06. 2024

육아 13주차. 인생 첫 여행. 그리고 성장통

여행은 엄빠의 욕심이었나 봐. 그래서 너한테 너무 미안하네.

징검다리 휴일은 무척이나 설레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휴가로 꽉 채워서 징검다리가 아닌 황금연휴를 만든다면? 두 말할 나위 없겠죠. 바로 독일의 5월 초.  Himmelfahrt라고 하는 승천강림일 휴일이 있었습니다. 목요일 휴일. 두말하면 입 아프죠. 바로 셰프 앞으로, 휴가 서류 들고 가!! 금요일 휴가를 쓰고 나니 4일의 빨간 날. 마음이 흡족합니다.


'오랜만에 연휴인데, 아가도 어느새 3달 가까이 컸고 이달 말에는 100일도 되는데, 슬슬 여행이라는 것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숨어있던 여행 욕구가 뿜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실 말이 여행이지, 타지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기 위한 일정을 잡아봅니다. 4일 연휴니까 첫날과 마지막날은 준비와 휴식을 취해야 하니, 금요일 토요일로 이어지는 1박 2일 일정이 적당해 보입니다. 때마침 첫 번째로 만날 약속을 잡던 지인의 여섯 살배기 첫 딸이 생일이라고 하네요. 


기다려 삼촌이 선물 사들고 갈게!!!!


그렇게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의 지역에 있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지인과의 약속, 그리고 둘째 날, 그곳에서 또 1시간 3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지역에 있는 9개월 아가를 키우는 지인과의 약속을 잡았습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제가 학업을 했던 도시라 너무 익숙해서 여행이라기보다는 생일 축하해 주기 위한 방문이 목적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죠. 


업무적으로 회사차량을 운전한 것을 제외하고 오랜만에 기차나 버스가 아닌 여행. 독일에서 첫 렌트. 설렘과 긴장이 섞였습니다. 운전이라면 한국에서도 꽤나 오래 해왔고, 나름 무사고를 자랑하는 저였지만 오랫동안 잡지 않은 핸들은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자주 있는 렌터카 여행도 아니기에 저의 오랜 로망이었던 JEEP로 예약을 합니다. 저의 BEST 로망은 루비콘이지만, JEEP 브랜드 자체에서 오는 로망이 있기에 다른 차량들보다 조금 더 비쌌지만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 확정하고 나니 보이는 "oder ähnlich..." "또는 유사한 차량..."이라는 문구가 조금은 께름칙했습니다만 말이죠.



그리고 그 께름칙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육아일기와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이지만 잠시 썰을 풀어보자면, 독일에서 JEEP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는 저의 로망은 현대 I30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세차가 다 되어있다고 말했지만 내부만 정리되었지 외부에는 죽은 벌레 사체와 새똥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대 I30로 말이죠. 뭐 현대차 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좋죠, 현대차. 다만 저의 로망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JEEP가 HYUNDAI로 바뀌다니요... 크흡;;;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호텔도, 두 집에 방문 약속을 다 잡아놓은 상태. 출발해야죠. 아, 가장 문제였던 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제가 수동에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오토차량으로 예약해 놓은 차량이 수동 기어차량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아...;;;;


뭐, 렌터카 대여에 관한 에피소드와 불만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제 아가와 함께 출발을 해야 할 시간이죠.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유모차를 비롯한 짐들을 싣고 출발을 합니다. 아가와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인데요, 왜 아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두 배가 아니라 세배 네 배 힘들다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일단 짐이 어마무시합니다. 저희 두 부부가 여행을 떠날 때는 3박 4일을 가더라도 배낭 하나만 메고도 다니곤 했었는데요, (실제로 부다페스트도, 베네치아도 이렇게 여행을 했었죠) 하지만 아가와 함께 하는 여행길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우선 유모차 헤쳐 모여!! 분해해서 넣어도 일단 트렁크를 꽉 채워버렸습니다. 일반 승용차라면 어림도 없었을 일!! 콤비차량이었지만 트렁크는 유모차로 끝. 그리고 뒷좌석에 아가 시트를 놓고 와이프가 뒤에 함께 타야 하니 조수석에 짐을 실어봅니다. 아가 범보의자를 비롯해서 가방 2개. 그리고 저희 두 부부의 여행 용품이 들어있는 배낭 하나. 조수석에서 저에게 말을 걸어줄 친구가 타야 할 자리는 짐칸으로 바뀌었습니다. "아가 아빠는 괜찮단다..."


그렇게 떠난 여행.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괜찮았지만 괜찮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그 자체는 저희 부부에게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여행 그 자체는 아이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었나 봅니다. 물론 잘 웃기도 하고 잘 놀기도 했지만 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더랬죠.



여행 중에 낯섦이 가득한 공간을 매번 마주하며, 울음이 그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잘 먹던 모유도 분유도 잘 먹지 않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그렇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하며 불안해하고 울고 칭얼대던 아이가 어둠이 내려앉은 호텔방. 조도가 낮은 불빛 아래에서 엄마 아빠의 얼굴을 조용히 마주하며 싱긋 웃어주던 그 순간. 이 여행이 누구를 위한 여행이었나 자문하게 되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이들을 만나고, 많은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 그 모든 것에 아이에게는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일일 것이고, 자라나는 과정의 단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불편해하고 울고 보채는 아이를 보는 그 순간, 잘 먹고 잘 자고 놀던 아이가 왜 이렇게 보챌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을 부족한 아빠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빠의 욕심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여행이었을까, 이틀간 약 600km를 달려가며 두 도시에서 두 가정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온 이번 여행. 과연 누구의 선택이었고 누구를 위한 여행이었을지 다시 한번 곱씹으며 아이에게 이번 주만큼은 미안함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침 호텔방에서는 컨디션이 돌아왔고

아빠와 여행동안 잘 다녔지만 말이죠. 이 모든게 아이에게는 하나하나가 큰 도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도 며칠간 아이의 칭얼댐은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성장통의 시기가 찾아온 것인지 여행이 끝나자마자 사나흘 간 저녁시간만 되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며 이게 여행 때문은 아닐까, 여행에서 많이 고달팠던 아이가 뒤늦게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많이 배웠습니다.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무언가 하려고 할 때, 부모 본인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시야에서 다시 한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어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하나가 아이에게는 온 힘을 담은 도전이 될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한 주였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또 조금 성장을 하였고, 우리 아이도 성장통과 함께 한 뼘 더 자란 한 주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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