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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an Jan 16. 2020

Gustav Klimt

빈에서 활동한 가장 '빈'스러운 화가

아름다운 남녀가 황금빛 옷에 쌓여 사랑을 나누는 그림을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클림트의 키스를 본 적이 있다. 나도 클림트를 알기 전에도 이 그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화가의 삶과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나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전 서점에 들러서 우연히 그에 대한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에밀리 플뢰게와 구스타브 클림트

내가 책을 보면서 가장 놀란 점은 클림트의 모습이었다. 이전까지 그의 그림을 보면서 모습을 상상해봤을 때, 클림트는 되게 날렵하고 키가 크면서 신사 다운 모습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봤을 때,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작고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었다. 이런 외모에 어울리게 그는 성실한 화가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케치 겸 산책을 나섰는 등 본인의 건강 관리와 작품 활동에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유디트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그의 그림은 성에 대해서 상당히 직설적이다. 이 그림 "키스"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그림을 보면 성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성실한 생활과는 별개로 그는 다양한 여성과 관계를 맺고 살았다. 실제로 그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면 반나체의 여성 모델들이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번잡한 관계와 별개로 그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 재산을 상속해주는 등 대단히 책임감 있는 인물이었다. 

빈의 카페

클림트가 활동한 시기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말기였다. 제국이 저물어 가는 때에 정치인들은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서 외면하게 만들고 미적 분야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이 미적 분야에 대한 집중은 빈의 버팀목이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빈의 카페 문화를 발달시켰고 그곳에서 예술가들이 서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교류의 장이 되었다. 제국의 말기에 이런 밝은 면도 있었지만 어두운 면도 존재했다. 다양한 민족이 모였던 제국인만큼, 민족주의가 부흥할 수 없도록 정부에서는 비밀경찰을 운영함으로써 그들을 검열하고 탄압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클림트의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두 가지 키워드는 "황금시대"와 "자포니즘"이다. 우리가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황금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장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비잔티움 건축의 황금 모자이크에서 얻어왔다. 중세시대 모자이크에는 왕과 왕비를 묘사할 때 많은 금을 사용했다. 이런 금 장식에서 클림트는 금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장식으로써의 영원성을 엿본것이 아닐까. 또한 금의 사용은 예술가를 신처럼 보이게 한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모델보다는 장식에 대해서 더 신경쓰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특징도 클림트가 황금 장식에 비중을 두기 시작하면서 드러난 경향이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2

다음 키워드는 자포니즘이다. 자포니즘은 1860년대 중반에 파리에서 시작된 예술계의 바람이다. 상당히 보수적인 도시였던 빈에서는 20세기 초가 되서야 도입이 되었는데 이때 클림트는 일본 문화 중에서도 특히 기모노와 가면 '노'에 집착했다. 위의 그림에서도 동양적인 문양과 아프리카의 민속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난다. 자포니즘의 영향 중에 가장 큰 것은 기존의 원근법을 중시하던 클림트는 우키요에를 접하면서 원근법에서 벗어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다.

클림트 빌라

클림트는 빈에서 활동했던 화가이다. 그 시절 빈은 20년이 늦게 흐르는 "어제의 세계"였다. 클림트는 빈에서 평생을 살았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휴가는 아터 호수로만 떠났다. 클림트의 집이었던 클림트 빌라는 빈의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빈에 살면서 사람들의 생활방식, 도시에 싫증이 났지만 떠날 수는 없었다. 이런 그의 타협안이 집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키스

그의 대표작인 키스를 보면 우리는 사랑을 나누는 커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혹자는 이 그림에서 클림트의 인생이 보인다고 말한다. 어두운 배경에서는 그가 좋아했던 휴양지인 아터 호수의 모습이, 황금빛 무늬는 그가 영감을 받은 비잔티움의 모자이크와 그의 아버지의 직업이었던 금세공이 보인다. 클림트는 "어제의 세계"에 살았던 화가이다. 하지만 그가 초기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했던 것을 보면 그 스스로는 "어제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클림트는 그의 아버지와 동생이 그랬듯이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남아서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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