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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17. 2020

신입사원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 교육에 많은 노력과 돈을 들였다. 한 달 정도의 일정이 정해지면 교육프로그램, 강사, 교육의 수준 등 많은 요소들을 검토하고, 강사 섭외나 교육생 숙소, 입퇴소 차량 등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신입사원 교육은 교육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선임 직원들에게 맡겨졌다. 신입사원들이 회사나 업무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직장예절이나 고객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해서도 소양교육이 필요했다.

신입사원들이 교육원에 입소할 때면 누가 봐도 신입사원 티가 났다. 교육기간 중에는 단체로 트레이닝 복을 입으니 당연히 태가 나게 마련이지만, 입소식이나 임명장 수여식 땐 정장을 입었다. 그런데, 정장을 해도 처음 정장을 입는 경우가 많아서 어딘가 이 어색했고, 여성의 경우 하이힐을 처음 신는 여직원들이 많아서 걸음걸이 불안 불안한 경우도 많았다.


그 해 1월 하순에 눈이 많이 내려 쌓였다. 눈이 내리면 교육 진행자들은 신경이 곤두섰다. 낮에 눈이 녹아 흐르다 밤에 얼어붙으면 매우 미끄러워 위험했다. 입사시험에 합격한 청춘들은 눈 쌓인 연수원 풍경에 마음이 들떠 돌아다니기 마련이어서, 교육 진행자들만 속이 타들어 갔다.


며칠 전 소동이 있었다. 강의는 오후 6시면 마무리되지만, 팀별 활동을 하면 밤 9시가 넘어야 신입사원들은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직원들이 숙소도 들어간 직후 여직원 숙소에서 비명이 들렸고, 신입사원들이 놀라 비명이 난 숙소로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비상연락을 받은 교육 진행자가 달려가 보니 낯선 외부인 세 명이 민망한 듯 서 있었다.


경찰을 부르고, 소란이 진정된 후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들은 신용카드 영업사원들이었다. 어떻게 연수원에 숨어 들어왔는지, 밤 아홉 시가 넘도록 숙소 근처에 숨어있다 신입사원들이 숙소로 들어가자 따라 들어가 영업활동을 하다 사달이 난 것이었다.  이들 중 한 명이 문이 잠기지 않은 숙소에 들어섰고, 워를 하고 나오던 신입사원이 놀라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신용카드 영업사원들이 신입사원들에게 회사 측에서 의무적으로 신용카드를 만들도록 했다며 거짓말을 해서 사회 경험이 적은 이들을 속였던 것이다. 신용카드 영업인들도 얼마나 실적에 목말랐으면 그리 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밤에 숙소에 몰래 침입해 거짓으로 영업활동을 한 일을 덮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 사건 직후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새벽 운동도 할 겸 숙소에서 나와 연수원을 향해 걸었다. 작은 산등성이를 넘자 연수원이 한눈에 들어왔고, 숙소동에 불 켜진 방이 눈에 들어왔다. 흐뭇했다. 이리 열심히 공부하는 신입들이 있다니... 수료식 때 상이라도 챙겨줘야지 싶어 천천히 숙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숙소에 가까이 가자 뭔가 수상했다. 왁자하니 술판 분위기였다. 신입사원들에게는 한 달 동안 술을 못 마시게 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지는 법.. 나도 신입사원 시절에 몰래 연수원들 빠져나가 소주 몇 병 구해와서 동료들과 나눠 마신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는 것은 과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 똑! 문을 두드리자 왁자지껄 시끄럽던 방이 조용해졌다. 다시 문을 두드리자 신입사원 한 명이 빼꼼 얼굴을 내밀다가, 이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새벽까지 소란스럽게 술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니 마무리하세요"하고 돌아섰다.


한 번은 못 본 척 눈 감아 줘야지.. 옛날 나도 몰래 술 사다 먹었었는데.. 하던 운동이나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에 연수원을 벗어나 30분가량 걸었다. 돌아가는 길 다시 연수원을 지나야 했다. 아까 그 사원들은 잠들었을까? 4층 그 숙소를 자동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여전했다. 처음 봤을 때처럼 불이 켜져 있고, 술 취해 떠 느는 소리는 오히려 볼륨이 올라가 있었다.

 

다시 문을 두드리니 잠시 조용해졌다. 아까 그 신입사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아침 9시까지 교육연수부로 오세요." 싸늘하게 한 마디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입맛이 썼다.


퇴소를 시키면 그 신입들의 회사 생활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꼬일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회사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내가 규정을 어긴 신입들을 그냥 보고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세한 경위서 받고 오전 중에 퇴소시키세요" 하고는 출장을 갔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 신입사원들이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눈을 치우고 있었다. 교육을 담당하는 차장이 얼른 달려와 설명을 했다. "오늘 종일 교육에서 열외 시키고 눈 치우라 했습니다. 실수는 했지만 어떻게 사람 인생을 꼬이게 할 수야 있습니까.....?, 제가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아무 말 없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 년 후 교육담당 차장을 불러 그 말썽 피웠던 신입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물었다. 다들 잘 지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이 썼던 경위서를 각자에게 편지로 붙여주라 했다.  그 꾸러기들 중 몇 명은 요즘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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