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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Mar 17. 2020

남은 이야기

엄마의 산소에 갈 때마다 큰아버지의 산소가 눈에 거슬렸다. 엄마 산소보다 조금 위에  큰아버지 산소가 있었고 아무리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해도 눈길이 갔고 미운 마음이 속에서 올라왔다. 마와 큰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 전 마음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산소에 와서까지 불편한 마음을 느끼기 싫었다.


그 날은 큰아버지를 위해 소주 한 병을 따로 준비했다. 어머니는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한 번도 제사 음식을 준비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 산소에서 기도를 한 후 큰아버지 산소로 올라가 소주 한 잔을 따라 드렸다. "큰아버지, 큰아버지가 엄마와 나에게 설음 줬던 일 이제 다 잊을게요."그리 말하고 인사를 드렸다


큰아버지가 그리 모질게 나와 엄마를 대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냥 농사를 지으며 살 수도 있었다. 고마워 할 일은 아니라도 내 삶의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큰아버지에게 그리 인사를 한 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차피 돌아가신 이가 내 마음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었다.

 

솜틀집 사장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지는 못하셨다. 반면   사장님 사모님은 얼마 전 백순 잔치를 했고, 가족들만 함께하는 자리에 나와 아내 아이들까지 모두 초대해서 우리를 가족으로 대접해 주셨다. 솜틀집 사람들은 내가 어렵게 공부해서 잘 되었다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백순이 넘도록 건강하신 사모님은 날마다 나와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셨다.

 

벙춘선생님은 원주 시청 근처에서 치킨집을 운영하시는데 성실하고 깔끔한 성격이라 그런지 다른 치킨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장사를 잘하시고, 자녀들도 공무원이 되어 잘 나가고 있지만 퇴근 후에는 치킨집으로 달려와 벙춘선생님을 돕는 효자들이다. 우리 야학 친구들은 두 해 전 선생님 가게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좀 술에 취하기도 했지만 "스승의 은혜"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드렸다.


난 대학을 졸업하는데 13년이 걸렸다. 학업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야학 선생님들이 어렵게 마련해 주신 등록금을 생각하면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금대교회 그 여자아이 찾아 간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그 아이는 간호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반갑긴 했지만 외사랑으로 애타던 그 마음은 세월에 빛이 바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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