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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Mar 22. 2020

자리다툼

직장인들, 특히 공무원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자리에 목숨을 건다.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것이 승진자리요, 요직이나 한직을 놓고 벌이는 보직 다툼이 그다음이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내다 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승진이나 보직을 위한 자리다툼은 조직 내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좋은 인재를 고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정상적으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믿을만한 리더들은 공정한 평가를 통해 좋은 인재를 길러내지만 사리사욕에 눈이 먼 리더들이 공정성을 버리는 순간 아첨과 줄 서기, 권모술수, 분열과 다툼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고, 조직이 병들기도 한다.


그 날은 아침부터 긴장이 흘렀다. 이사가 부임한 후 처음으로 상급기관에  업무보고를 하는 날이어서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었다가는 신임 이사에게 찍혀서 앞날이 고달플 수 있었다.  업무보고 자료는 그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 반들거릴 지경이었다.  회의장 준비 상태도 여러 차례 점검을 했다. 마이크 상태도 좌석마다 점검을 하고, 회의자료도 자로 잰 듯이 간격을 맞춰 가지런히 준비를 했다. 회의 중에 마실 음료수 하나까지도  보고받는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해서  준비를 해 놓았다


마지막 문제는 신임 이사의 자리였다. 신임 이사는 부임하기 전 상급기관에서 일하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었고, 오늘 보고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신임 이사의 부하였었다. 그러니 이사에게 하석을 권하면 그가 불쾌할 수 있고, 상석에 앉게 되면 상급기관 사람들이  문제를 삼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직에서는 일단 직속 상사 위주로 처신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직속 상사에게 찍히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조직이었다. 이사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상급기관 사람들과 상석에 나란히 앉겠다 해서 그리 자리를 배치했다.

  

보고 받는 사람들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역에 차를 보내 마중을 하고, 회사 현관에는 간부들이 전부 도열을 해 깍듯한 인사로  맞이했다. 엘리베이터를 미리 잡아놓고 그들이 타자 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두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고 상급기관 사람이 자리에 앉은 후, 마지막으로 이사가 느긋하게 걸어 들어와 상급기관 사람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그 조직을 떠났어도 떠난 자리에 방귀 냄새도 아직 남아있을 것이었고, 부하로 있던 사람이 업무보고를 받으러 온다니 낙하산으로 자리를 잘 잡았다고 자랑도 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업무보고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상급기관 우두머리가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 지금 누가 보고를 하고 누가 보고를 받는 겁니까!, 나는 장관을 대신해서 나온 사람이에요. 보고 하는 사람이 상석에 앉아 보고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가 언성을 높이며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에서 나가버렸고, 상급기관에서 온 사람 모두 싸늘한 눈빛으로 따라나섰다. 우리 쪽 간부들은 그들을 잡을 생각도 못하고 쩔쩔맸다. 가장 난감한 것은 신임 이사였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부하였던 사람이 회의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짓밟고 나가버리니 체면과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상급기관은 예산이나, 법령에 대한 권한을 틀어쥐고 있어서 그들에게 밉보였다가는 한 가지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이 공공기관이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선배였던 사람도 일단 그 자리를 뜨는 순간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인데 신임 이사는 그런 이치를 알기에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암튼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보고회의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했고, 새로운 보고회가 있던 날 그 이사는 몸이 아프다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한 번은 우리 동료가 공무원을 회의에 초대했는데, 그 공무원이 회의에 참석할지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다. 동료는 할 수 없이 담당 공무원이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각해서 회의를 준비했다. 세종시에서 우리 회사까지 오려면 몇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참석하겠다는 확답이 없었으니 그리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오후 세시가 되어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 후 그 공무원이 갑자기 회의장에 나타났다. 동료의 얼굴에 낭패감이 지나갔다. 그 공무원은 회의장에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을 알고는 그야말로 폭발해 버렸다. 자기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 한 것도 아닌데, 좌석이 없다는 것은 자기를 무시한 처사라며 사람들을 윽박질렀다. 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결국 동료는 얼마 후 좌천이 되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동료의 상사가 여러 번 사정을 했지만, 그 공무원은 동료를 좌천시키지 않으면 어떤 업무협조도 없다고 계속 억지를 부려 회사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그의 갑질은 정말 심해서 심지어 우리 기관장에게 까지 욕을 보일 정도였다. 기관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우리 직원들을 깔아뭉개며 비난을 일삼았다.

  

그렇게 함부로 갑질을 하던 그에게 얼마 후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우리 기관장이  장관으로 발탁이 되어 그의 직속 상사가 되었다. 신의 한 수였다. 그는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한직으로 쫓겨난 후 쓸쓸히 사라졌다. 그 때문에 좌천을 당했던 동료는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을 팔아서라도 축하주를 실컷 먹고 싶다며 쓰린 속을 달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받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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