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차리기 전에 (2)
" 차 한잔 하세요."
실망한 내 모습이 마음에 걸렸는지 의자를 권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인연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사이에 두고 앉았습니다.
차맛은 몰랐지만 전해지는 온기는 몸을 데우고 긴장을 풀기엔 충분했습니다.
"원래 책과 인연이 있는 일을 하세요?"
사장님이 저를 빤히 보시며 물었습니다.
" 전업주붑니다. 20대 꿈이었는데 사는 게 바빠 잊고 살다가 이제야 생각이 나서요."
차마 책 한 권 읽고, 잊고 지낸 꿈이 생각났다고 말을 할 순 없었습니다.
"꿈이라... 마치 바리스타 자격증 따서 카페 차리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ㅎㅎ. 꿈을 좇기엔 현실이 녹록지가 않아요."
"제가 잘 몰라서 여쭙는데 어떤 점이 그런가요?"
"아무리 좋아하고 꿈이라도 적자가 누적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한 달에 100만 원은 벌 수 있지 않을까요?"
적자 누적을 말하시는데, 한 달에 100만 원을 말하는 내가 참 어이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솔직해야 솔직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 같아 염치 불고하고 물었습니다.
" 저는 몇십 년을 독서모임을 하고 책방을 시작한 다했을 때도 지인들이 다 뜯어말렸어요. 그런데 남편은 내가 책방을 하. 고 싶은 걸 잘 아니까, 말리지 않고 한 달에 마이너스 100만 원, 계약기간 24개월을 곱해 2400만 원. 그 정도는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손해 본다 생각하고 시작하라더라고요."
담담하게 말하시는 사장님의 말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났습니다.
"저도 대충 유튜브나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보긴 했지만 책방이 그렇게나 수익내기가 어렵나요? “
" 책 팔아서 책방 유지는 힘들어요. 그러면 보통 커피를 파는데 여긴 그것도 안 되지만, 커피를 판다 치더라도 나 같은 경우는 책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싫더라고요."
50대 아줌마의 철없다 치부할 수 있는 질문에도 사장님은 친절히 답했습니다.
나는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목을 식어버린 차로 적셨습니다.
들어왔을 때 책을 꼼꼼히 훑어보시던 50대 아주머니가 책 다섯 권을 탁자에 올려놓으시며 카드를 꺼내셨고, 카드기는 영수증을 뱉어냈습니다.
"혹시 사장님, 그림책 한 권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생일마다 책 한 권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데, 그날이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책장을 스윽 훑어봤는데 그림책이 보이지 않아 사장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장님은 '내 어깨 위에 두 친구'를 주시며
" 이 책은 그래픽노블 중에서도 내용도 충실하고 좋아요."
" 예…“
그때까지 그래픽노블이 뭔지 몰랐지만, 묻지 않고 책을 펼쳤습니다.
그림이 주는 색감이 따뜻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생일 선물로 충분했습니다.
" 책방... 그래도 하시고 싶다면 본인만의 필살기를 꼭 살리고, 정말 오래 철저하게 준비하셔서 하세요."
사장님이 건네는 위로와 응원이 고마워서 예상에 없던 큰 애, 작은 애 책까지 샀습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이미 늦은 오후였습니다. 책방을 나왔을 때 해는 사라지고, 온 하늘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책방 사장님의 현실적인 조언으로 현실감을 찾은 첫 번째 독립서점 방문이었지만 타격만 남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진심 어린 사장님의 현실적이고 따뜻한 조언 덕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감은 잡은 거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