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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Mar 04. 2024

나는 1시간 10분 동안 국제 미아였다

타이베이 메인 역에서 생긴 일

 “블라블라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

난생처음 혼자였다. 그것도 외국에서.

나의 모든 신경은 공항 열차 방송에 쏠려 있었다. 1차 관문인 타오위안 공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공항 열차도 탔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들쳐 맨 배낭끈을 꽉 잡았다. 내 곁에 선 사람들을 곁눈으로 봤다. 나 빼고 모두 일행들과 함께였다. 들뜬 표정으로 소곤거리는 한국말이 벌써 그리울 지경이었다. 할 줄 아는 언어가 한국말 뿐인 50대 아줌마가 겁도 없이 혼자 해외여행을 오다니. 미친 짓이었다.

그 미친 짓을 내가 벌렸고. 그러니까 국제 미아는 안 돼야 된다.

     

 사람들과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렵기는 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그런데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어떡하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나만 남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대만 5월이 더워서 나는 땀이 아니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나간 오른쪽 길로 갔다. 밖으로 연결된 길이었다. 정신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역사 안이 안전할 것 같아 나가지 않았다.     

숙소는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고, 개찰구 저편 공항 철도 타는 곳만 보였다.


이대로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갈까. 그 유혹을 떨쳐내기 위해 일단 움직였다. 표지판을 찾아서. 찾아낸 표지판 그 어디에도 숙소 가는 파란색 BL 라인은 없었다. 부끄럽지만 중국어는 '쎄쎄', 영어는 한 번도 외국인과 대화를 해보지 않은 나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는 '국제 미아' 뿐이었다. 그 생각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핸드폰 검색조차 생각 못했다.


 역무원을 찾아서 무작정 왼쪽 길로 걸었다.      

“익스큐즈 미” 얼핏 보기에 제복같이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 서 있는 그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익스큐즈 미” 그 사람이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치며 중국어로 솰라솰라. 도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 역무원도 아닌 것 같았고.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역무실을 찾았다.


  " 엄마, 대만은 나도 몇 달을 살고 온 정말 안전한 나라라니까."

보름 전, 작년에 대만 교환학생을 다녀온 작은 딸이 말했다.

" 니는 영어라도 되지만 엄마는 말을 못 해서 안 된다."

" 파파고도 있고 걱정할 게 뭐 있노."

남편도 딸을 거들었다.

비행기 티켓을 끊은 밤이 생각났다.  


드디어 발견한 역무실 창구. 나는 파파고를 돌려 작은 구멍 안으로 폰을 내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글맵을 켰겠지만 그땐 중국어가 간체자, 번체자로 나뉜다는 생각도 못 했다. 그냥 파파고 제일 상단에 뜬 중국어를 눌러 아크릴 벽 너머 역무원에게 내밀었다. 나를 물끄러미 보는 역무원. 뭔지 모르지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룡산템플스테이션. 웨어이즈 룡산템플스테이션?”

간절한 내 목소리에 역무원이 계단을 가리키며 “고우”라고 말했다.

“땡큐”

아크릴 벽 너머에 있는 그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큰 소리로 인사했다.  


역무원이 가리킨 계단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파란색 BL 라인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도착한 계단 끝은 북쪽의 끝이자 동서남 세 갈래 길의 시작점이었다.

할 수 없이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러나 서쪽에도, 북쪽에도, 남쪽에도 BL라인은 없었다.


 타이베이 메인 역사 한가운데 아니 끄트머리 일 수도 있는 그곳에서 울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서 출발한 새벽 4시 30분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상태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서쪽에서 보았던 편의점으로 갔다. 생수를 계산하고 반 병을 한 번에 마셨다.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계산할 때 젊은 여직원과 나뿐이어서 용기를 냈다.

“익스큐즈 미. 웨어 이즈 룡산템플스테이션?”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룡. 산. 템. 플. 스. 테. 이. 션.”이라고 한 자 한 자 끊어 말했다.


 직원이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보이는 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계단은 조금 전까지 '올라갈까? 말까?' 저울질하다 포기했던 계단이었다.

“ 고우 데얼.”

"고우 데얼?”편의점 직원이 가리킨 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확신이 필요했다.

"예스"

"쎄쎄"

나도 모르게 나온 폴더인사로 등에 맨 가방이 앞으로 쏠려서 고꾸라질 뻔했다.


 편의점 직원이 말해 준 계단 앞에 섰을 때,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미 경험한 것도 있고. 이 계단 끝이 또 다른 길의 시작점일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그러나 뒤로 물러 날 길도 없었다. 다른 길은 이미 다 가봤으니까. 나는 나를 믿어야 했다. 믿을 사람이 나뿐이니까.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 편의점 직원이 말해 준 계단을 올라갔다.

그 길 끝에 블루라인 표지판이 있었다.

공항 열차에서 내린 지 1시간 10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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