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beginner's luck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회사의 막내가 되었다. 첫 주는 적응하고 업무를 익히는 것만 하느라 정말 바쁘게 지나갔다. 신입이다 보니 과중한 업무는 당연히 없었으며, 정확히 기획을 어떻게 하는지 중요했다. 문제는 회사의 스타일이 기본적인 것만 던져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찾아서 하는, 개인플레이 위주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그렇게 운영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형식에 적응하기에 신입의 입장에서는 매우 힘들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가 있었다면 더욱 수월했을 텐데 말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뤄보겠다. 그래도 외부에서 출판기획 강의도 들으며 차차 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기간 동안 작업이 진행 중인 책도 있어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 강의와 같았다.
내게도 실전의 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첫 기획은 모 오피스 프로그램 기술서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면 저자를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점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린다.) 다만 기초적인 사용법이나 자격증 용도의 책은 아니고, 직장인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기획은 윗선에서 긍정적으로 통과되었고, 이에 맞는 저자를 섭외하는 과정이 남았다.
해당 오피스 프로그램이 직장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프로그램인 만큼, 강사 못지않게 노하우와 능력을 갖춘 고수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눈여겨본 온라인 사설 강의가 있었다. 강사 이력에 출판 경력은 없었으나, 쉬운 설명과 친절한 피드백으로 수강생들에게 호평이 많았다. 내용을 정리하면 책으로도 좋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들어 강사의 개인 홈페이지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제의 메일을 쓰는 것만 거의 1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쌩 초보에게는 그만큼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일이 또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방법을 좀 제대로 가르쳐주면 참 좋겠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그것도 대뜸 이메일로 출간 제의를 한다면 매우 놀라겠지? 아마 사기일 것이라 생각할 확률이 클 것이다. 우선 나는 내가 다니던 출판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강의 콘텐츠를 보게 된 경로와 이유, 출판하려는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원하시면 미팅이나 화상 인터뷰도 가능하며, 관심이 있으시다면 답장을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보통 이메일로 즉각적인 확인은 어려우니, 나는 일주일 정도는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분으로부터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콘텐츠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출간 제의가 너무 기쁘니 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렇게나 쉽게 연락이 되나?! 믿기지가 않아서 메일을 몇 번이나 뜯어봤다. 지역이 먼 관계로 직접적으로 만나기는 어려워서 영상통화로 미팅을 대신하게 되었다.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닌데도, 법적인 계약이 언급되는 것이라 많이 긴장했었다. 다행히 저자분께서도 매우 친절하셔서 대화는 잘 끝냈다. 이후 몇 번의 이메일 연락 끝에 책에 들어갈 내용과 예제, 분량을 확정한 뒤 계약까지 성사되었다. 그게 모두 일주일도 안 되어서 성사되었다. 그렇게나 빠른 계약은 출판사에서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기획과 계약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첫 기획만큼 성사와 계약이 빠르게 이뤄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저자분께서는 나의 피드백을 성실하게 반영해주시고, 마감도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연락을 주셔서 조정하는 분이셨다. 이후 과정에서도 매끄럽게 진행되어, 계약일로부터 8개월 뒤 내가 첫 번째로 계약한 책이 무사히 나오게 되었다.
아마도 초심자의 운이었을까? 그때 기획 섭외와 계약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 소극적으로 업무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금방 그만뒀을 지도 모르지. 운 좋게 좋은 저자분을 만나 뜻이 만나 책이 나오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기적에 가깝다.
그 책을 받아보았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생산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막연한 바람이, 글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내 소박한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