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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Aug 11. 2021

도둑맞은 내 기획

아무리 그래도 대학교 과제를 가져가냐

 저작권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특히 저작권을 직접적으로 다루던 일을 했다 보니, 이런 이슈에서는 늘 뜨거운 불을 보며 고구마나 구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출판 기획 관련으로는 글을 더 이상 안 올릴 것 같다 생각하여 브런치북 발간 후 매거진을 지웠으나, 출판과는 별개의 콘텐츠 기획을 사이드 프로젝트로도 계속 진행 중인 상태이다. 결국에는 콘텐츠 기획자라는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새로운 매거진의 첫 글로는 상당히 과격한 내용이 되겠으나, 어디 가서 털어놓지 못하고 썩혀둔 일화로는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싶어서 적는다. 신상 등이 특정되지 않게 상세한 표기 없이 적어두었다. 이전의 내용을 읽고 싶다면 이쪽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방향이 달라질 것 같아서 분리를 언젠가 해야 했을 것 같다.


 아직 출판 기획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업계에 새로운 열풍을 불게 한 ㄱ프로그램의 런칭이 있었다. 저서를 기획하기 위해 저자에게 섭외 연락을 넣은 날이었다. 저자라도 해주기도 싫은 사람이라 A라고 부르겠다. A는 내 연락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가 간단히 짜둔 임시 목차와 기획안을 보고 당장 계약하고 작성해보겠다며 열의를 불태웠다. 저서를 쓰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며 기뻐하는 모습까지 보이니,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계약 전, 저서의 간단한 방향과 저자의 스타일을 알기 위해서 나는 A에게 대외적으로 공개된 포트폴리오나 생각한 내용이 있다면 내용 참고와 방향을 잡기 위해 논의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A가 메신저를 읽고 답장이 없었다. 내 설명이 어려웠나 싶어서, 내가 마침 대학 시절 전공으로 비슷한 방향으로 한 분석 내용이 있다고,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했던 ㄴ주제의 ㄷ프로그램, ㄹ코드 예시를 들었다. 당시 참고했던 국내 공공데이터에서 다운로드 받은 ㅁ데이터도 함께. 이런 내용을 내가 기획 중인 ㄱ프로그램으로 재해석해보자는 내용이었다. 학생 시절에 과제로 울며 겨자 먹기 하여 내느라 형편없는 내용이었지만,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접근과 소재로 예시를 든 것이었다.


 꽤 정성 들여서 메시지를 남겼으나, 그 역시도 답이 없었다. 계약서 초안을 이메일로 보내려 다시 연락을 취했다. 프로젝트 속도가 나지 않으니, 우선 계약서라도 같이 보면서 검토하면 진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한 것이었다.


"A 씨, 내용 기획이 어려우시다면 계약서 초안을 임시로 보내드릴 테니, 계약을 우선 진행한 뒤에 미팅에서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도 가능합니다. 확인 후 답장 주시면 이메일로 초안 보내드릴게요~"


 A는 그다음 날, 다음 주가 되어도 답이 없었다. 대체 왜 이러나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것도 씹혔다. 그 후에 한 줄로 "죄송하지만 저서 집필을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문자가 하나 오고 끝이었다. 꾸준히 씹히다가 통보받은 저 한 줄은 기분이 정말 나빴지만, 더 나쁜 건 이로부터 약 석 달 뒤의 일이었다.


 A는 다른 출판사에서 내가 제안했던 내용과 똑같은 소재의 책을 냈다. 임시로 붙인 가제와 똑같은 제목을 사용했고, 예비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한 문구 내용도 비슷했다. 물론 시기가 비슷했고 해당 프로그램이 막 런칭되어 새로운 언어 열풍이 불 즈음이라 비슷하게 제안이 갈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다. (우리 쪽 계약 조건은 보지도 않았지만) 그쪽 출판사의 처우가 훨씬 좋아서 출간을 결정했을 수도 있다. 나와 계약을 포기한 직후, 새롭게 제안을 받아 생각을 바꿔 출간을 했을 수도 있다. 속사정을 모르니 바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차의 내용을 보자마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실습 내용에 있는 예시, 저건 내가 내용 협의 과정에서 저자를 설득하려고 보냈던, 내가 했던 과제의 내용이었다.


 아무리 콘셉트가 비슷해도, 이 세상에 넘쳐나는 수억 개의 공공데이터에서 ㄱ프로그램 실습을 위해 ㄴ주제를 다루기 위한 ㄷ프로그램의 ㄹ코드, ㅁ데이터 원본이 동일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용이었다. 당연했다. 내가 대학 시절에 과제로 선정해 혼자 분석한 게 다였던 과제였고 다운로드 수도 겨우 30회에 불과한 데이터를 사용했었다. 교수님도 뭐 이런 데이터를 가져왔냐면서 신기해했는데... 내가 졸업하고 그 몇 년 동안 모든 프로그램에서 아이리스 데이터셋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된 유명한 데이터가 된 걸까?


 데이터 자체와 프로그램 코드의 저작권은 주장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계약이 파기된 상태에서 내 과제물의 예시를 통째로 들고 가서 자기 책에 써버린 건, 당연히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게 흔한 소재도 아니었고, 당장 당시의 다운로드 수가 말해줄 정도였다. 그걸 내용으로 쓰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고, 이런 식으로 접근해보는 것은 어떠냐며 소개한 나의 과제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학생 시절 부끄러운 과제가 저런 식으로 남의 책에 쓰였다는 충격적이었다. 코드가 최초로 업로드된 곳은 스택오버플로우나 깃허브도, 기술 블로그도 아닌, 당연히 내가 다닌 학교의 온라인 과제 제출창이니 말이다.


 당시 회사에도 웃지 못할 이야기를 징징대며 말했는데, 부서 사람들 모두 번씩은 경험해봐서 초연한 반응이 나와 적잖게 충격이었다. 내게는 계약이 확정되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해프닝이었다.



마무리로는 뜬금없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 재밌습니다. 한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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