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감성지능’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의 저서를 통해 확대된 이 용어는, 언론의 도움을 얻어(?) 사회 속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 감성 지능이 유행한 데는, ‘지능’이라는 어휘의 몫이 크다. 우리는 인지적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지능지수(IQ)에 예민하다. 유명 연예인이나 방송인이 높은 아이큐로 측정된 이력이 있거나 멘사 출신이라고 하면, 이를 부각하기 바쁘다. 높은 아이큐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유전적 우월성을 자극하고, 차별화된 존재임을 보여주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
지능이라는 단어의 도움을 받아 감성지능은 관심을 독차지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존중하지 않는 듯하다. 학교는 여전히 인지적인 교육에만 집중하며, 교육의 성과는 인지적 성취를 통해서만 증명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미성숙한 증거로 증명되며, 감정을 잘 숨기고, 뻔뻔한 페르소나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인정받는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도 감정은 이성에 비해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감정적이다.', 감정에 호소한다.’, ‘감정을 주체 못 한다.’, ‘이성적이지 못하다.’ 이런 표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감정에 집중하거나 감정을 향해 기우는 건, 미성숙하고, 약하다는 인식을 한다. 감정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집단적 신념이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감정의 힘은 강력하다.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 우리는 커다란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성이라는 도구로 쌓아 올린 삶의 업적을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다. 감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 불안, 무기력, 우울 등이 나를 지배하고,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감정은 나를 날카로운 삶의 코너로 밀어붙이고, 순간적 선택으로 생을 포기하는 아픔을 만들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를 파멸시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행인 건 반대편에 서있는 긍정적인 감정도 부정적 감정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다. 황폐해진 마음 밭에 희망, 기대, 만족감, 성취감, 환희, 희열 등이 자라면,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힘없이 굴복한 무릎을 일으키며, 기회를 탐색하고, 도전하고, 몰입할 에너지를 제공한다. 왜 학교에서는 감정에 대해 자세히 배우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긍정적인 감정의 힘은 강력하다. 심리학자 프레딕슨(Fredickson)은 긍정적 감정의 역할을 설명하며, 그 영향력을 설명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감정을 무력화시키며, 우리 뇌의 주의력을 확장시키고,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 긍정적인 감정을 흡수한 뇌는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탐색하는 경향을 가지며, 목표를 향한 끈기를, 기꺼이 도전에 응하는 담대함을 선물한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감정도 의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행복 프로젝트 설립자 랜디 타란은 긍정 감정도 훈련을 통해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긍정적인 감정을 발견하고, 집중하고, 확장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주의력을 통해 특정한 감정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이를 증폭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짧은 순간이라도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이를 느낄 때, 우리 뇌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와는 전혀 다른 경로를 탐색하고, 이전과는 달리 상황을 해석하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 시시때때로 불안과 무기력이 나를 엄습하는 가운데, 긍정적인 감정을 활성화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다. 손바닥 뒤집 듯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위한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
나는 일상에서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그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다. 감정은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익숙하다고 느낄 때 무뎌진다. 우리가 새로운 콘텐츠, 새로운 장소를 찾는 이유는 뇌가 새로운 것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익숙함은 편안함과 효율성을 제공하지만, 감정을 예리하게 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특히 성취감과 같은 감정이 그렇다.
일은 반복과 효율을 통해 성과와 효율을 얻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한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가 자란다. 내가 해낸 일을 당연하게 여길 때, 우리 뇌는 '한 일'에 대한 피드백은 적게 하고 '해야 할 일'에 정보에 집중한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일을 해내고도,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있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쉽게 지친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해낸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성취감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지?', '시작도 못할 줄 알았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했네!' 이렇게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가 성취에 대한 감정과 감각을 생산한다.
'감사하는 마음'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에서 자란다.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걸 당연시하지 않을 때, 감사함을 느끼는 감정이 번진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와 시각은 긍정적 감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최적화된 통로다.
일상에서 긍정적 감정을 연습할 수 있는 또 다른 경로는, '의미를 생각하는 연습'이다. 의미는 우리의 존재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바짝 건조해진 마음에 수분과 생기를 공급하는 건 '의미'다. 의미 있는 시간, 의미 있는 경험, 의미 있는 관계는 내가 괜찮은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제공한다. 의미는 불쑥 찾아오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자라기도 한다. 일상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확대하려면,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을 할 때도 그 일을 하기 전,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도움이 된다. 하려는 일의 의미를 이해한 뇌는 그 의미를 얻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직장 일, 개인적인 프로젝트, 글쓰기, 주변 사람과의 연락 등 작고 큰 일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일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이 길 위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자란다.
포스트 코로나로 가는 길목 위에 있다. 급격한 변화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 또한 요즘 일상에서 자주 이런 질문을 떠올린다. 내가 얻은 대답은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긍정적인 감정에 예민한 마음'을 만드는 마음이다. 긍정적인 감정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마음은, 위기보다는 기회에 민감하고, 두려움에 얼어붙기보다는 변화를 위해 도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