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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축한신발 Jun 28. 2022

별 거 없이 좋았던 이에게, 이유가 생기면

영화 브로커, 스포 가득

* 영화 브로커 스포일러 리뷰


모든 영화는 한정된 시간(상영 시간)에, 한정된 시간(이야기 속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브로커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아이와 불법 입양이라는 접점에 닿기 직전과 닿은 순간, 그러고 조금 뒤까지 짧은 시간을 다룬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수진(배두나 역), 인상적인 상현(송강호 역), 그리고 뻔하지만 그래서 위로 얻은 소영(이지은 역) 셋이다.

—인물에 대해/상현은 비슷하고, 소영은 흔하고, 수진은 평범한데


상현은 감독의 전작 여느 인물과 비슷하다. 되는대로 살며, 그러다 보니 막장 구렁텅이까지 닿았다. 이리저리 치이며 말발만 늘었지, 실속은 없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나름의 이유를 붙이며 선의로 포장하고, 본격적인 욕망보다는 당장의 모면에 삶을 쓴다. 그리고 정이 있다.


정이 없으면 편했을 인물과 관객이지만, 그 정이란 게 모든 걸 불편하게 만든다. 뭔가를 포기하게 만들고, 희생하게 한다. 관객은 문제에 있어 가장 쉽게 욕할 ‘사람의 탈을 쓴 악마’를 잃는다. 단순한 위선이나 우유부단으로 느껴졌다면 그렇지 않았을 테지만, 송강호 배우의 연기는 상현을 한 명의 사람으로 느끼게 만든다.


소영의 설정은 흔하다. 보호받지 못해 자랐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지만, 그에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착하고 순수한 아이. 수많은 상처로 날이 서 있지만, 뒤늦게 사람의 온기를 깨닫고, 도움에 힘을 얻고, 반성하고, 새 삶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 행동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평면적인 설정.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모성애라는 초월적인 무언가로 이야기 전개까지 초월해버리지는 않는다. 엄마라는 특별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선택은 수많은 망설임 끝에 51:49 정도의 결정인 경우가 많다는 걸 보여준다. 그마저도 미련이나 후회에 대한 두려움, 또는 인간 본성의 어떠한 선함으로 옳은 결정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걸 느끼게 한다. 아이를 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부산 모 호텔 살인 사건 용의자, 불륜남 살해 후 도주에 방해되자 아이 베이비박스에 버려’ 같은 단편적인 보도 밖의 다른 모습들.


수진은 평범하다. 그래서 특별하다. “나 착해” “버릴 거면 낳지를 말아야지” “그건 복지부가 할 일이고” 냉소적이고 윤리 의식 있는 요즘 2040세대다. 딩크족이다. 남편은 전업 작가로 집에서 일하고, 취미는 요리다. 같이 애 키우기 좋은 상대라는 동료 이 형사(이주영 역)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아이 생각’ 없을 듯한 인물인데, 불법입양 문제에 집착한다.


변화가 인상적이다. 추적하며 생각이 점차 변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도청이다. 감정적인 동료와 달리 건조한 태도는, 계속된 실패와 갑작스러운 데드라인에 초조함으로 변해갔고 도청으로 이어진다. 깊이 알수록 흑백 구분하듯이 재단할 수 없게 되고, 무책임하다 꾸짖던 태도는 아이를 위하는 선택을 내릴 거라는 신뢰로 변화한다. 자수를 권한다.


우성을 기르기로 한 결정은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수진의 남편은 요리가 취미다. 수진은 그가 만든 슈바인학센을 그냥 족발이라 대꾸한다. 애정은 밀어낸다. 권태나 편해서 같은 걸 수도 있지만, 아이 문제가 가장 큰 이유 아니었을까.


구체적인 사정은커녕 인물 배경 설명도 없다. 그래서 수진은 관객으로 감독이 전하려 했고, 관객은 수진이라 받아들이려 추측할 뿐이다.


위장 작전에서 지시하고 대사를 수정하는 모습으로 보아 임신과 관련한 어떤 사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승진을 위해 낙태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체에 합장하는 경찰을 싫어하는 걸로 볼 때, 복음주의 기독교 집안에 입양돼 자란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에 가장 마음이 기운다. 많이 낳고, 많이 입양해 아이가 넘치는 집안에서 자라 아이가 질려 자신은 둘로 충분할 거라고 결정하지 않았을까.

—촬영/어둠이 주는 두려움과 포근함


비 오는 한밤에서 시작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까지 첫 시퀀스가 훌륭하다. 주황색 간헐적인 조명의 계단을 올라, 부산 가족 교회의 밝은 조명에 닿고, 깜깜한 차 안, 은밀한 감시와 이동, 그리고 새벽까지. 결국 빛이 보일락말락 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프리뷰다.


어둠은 이후 세 번 중요하게 쓰이는 데 하나는 훌륭하고, 다른 둘은 호불호가 갈린다.


기차 터널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장면이다. 소리에 묻혀 진심이 들리지 않는다는 설정 자체는 식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둠으로 인물의 표정을 날려 서로 볼 수 없고, 보일 필요가 없어진 상황에서야 비밀 많은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그 상황이 만드는 미적지근하게 따뜻한 감정과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된 인물을 통해, 보기에 급급하고 표정에 집착 같은 관심을 두는, 남을 파악하려 눈동자를 굴리던 게 영화 속 인물인지 관객 자신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 장면 기차가 터널 깊숙이 들어가는 컷 뒤에 나온다. 영화는 상하 이동이 대부분인데 심도를 보이고 들어가는 장면은 외부에서는 이 장면 하나다. 내부에서 보이는 장면은 두 개인데, 운전하는 장면이다. 하나는 시작할 때 브로커 팀을 따라가는 경찰 팀, 다른 하나는 끝날 때 떠나가는 상현이다.


다른 어둠 두 장면은 모두 동수(강동원 역)가 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동수는 성인의 입으로 말하는 입양아다.


관람차 씬은 날이 저무는 시간이다. 해진(임승수 역)이 높은 곳 또는 미래를 보기 무서워하자 상현은 진정하도록 무릎을 베게 하고 토닥인다. 소영이 후회 내지 현재를 두려워하자 동수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다. 안 보이자 두렵다는 소영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손을 거두려 하자 소영이 손목을 잡고 고마움을 표한다. 낡고 삐걱거리며 둥글게 상승하는 관람차 안에서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짧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위태롭고, 즐겁다. 감독 영화의 특징이다.


소영이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해진(임승수 역)이 돌려주는 장면은 오그라들지 않아 신기했다. 불을 끄기 전까지만 해도 손을 오므릴 준비를 했는데, 뻔하게 찡해버렸다. 영화에서 감독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은 두 가지인데, 배우가 카메라를 직시하고 말하거나 검은 화면에 말하거나 글자를 띄우는 방식이다. 이 장면은 완벽한 어둠은 아니지만, 감독이 태어나서 고맙다는 위로를 상처받은 이들에게 전하려 한 듯하다.

—비판점/ 감독의 한국 협업, 반대


상현의 마지막 선택은 의아하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대사와 우성을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인 결과인데, 이 강령은 영화 마더를 떠올린다. 둘은 차이가 크다. 상현은 우성보다 건달과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다.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바뀔 건 거의 없다. 신고할 거라 생각했고, 아이는 경찰의 주시를 받게 될 걸 알았다. 모두가 해피엔딩이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행복을 제로섬으로 놓고, 나머지를 모두 행복하게 만든 반대급부 같기도 하다.


소영을 불필요할 정도로 포장 받았다. 씻기도 전에 핥은 건 죽일 이유면 안 됐기에, 아이를 욕하고 뺏어가려 했다는 설정이 설명한다. 그래서 죽였고 ‘살인자의 자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극 중 배우가 설명해버리면 지금 이 상황이 무서워서라든지, 아기가 버거웠다는 이유는 아닌 게 된다. 바라보는 시선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가능성의 단절은 갑갑하다.


베이비박스에 맡기는 사람은 40명 중 1명만 돌아온다거나 보육원에서 자란 사람은 3%만 성공한다는 수치 설명은 가르침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통계 수치를 대사에 많이 담지 않았던 듯하다. 감독의 지향점이 사회고발은 아니었으니까. 사회통계를 담은 고발은 기사나 책, 하다못해 유튜브 동영상으로 푸는 게 더 적합하다.


장기간 잠복하는 집요한 경찰, 예배복을 입은 상현과 동영상을 지우는 동수의 치밀함, 초반 깡패를 피하는 소영 등 긴장을 주려는 노력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관람차 씬은 안 그래도 손바닥 뒤 소영의 눈물 등 식상한 구석이 많은 장면인데 굳이 로맨스까지 필요했을까 싶긴 하다.


+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파는 사람이 먼저인지, 사는 사람이 먼저인지, 버리는 사람이 먼저인지. 닭-달걀 문제는 매우 쉽다. 둘의 개념을 정하면 되니까. 후자는 어렵다. 정의가 책임 전가를 만들기 쉬운 게 인간사니까.

+ “원에는 시작점이 없다” 루나 러브굿(해리포터 시리즈)

+ 사실 글을 길게 늘일 정도로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아이유에 대한 팬심이 크다. 이지은은 아직이다.

+ 기생충과 함께, 나의 아저씨에서 영감을 많이 얻은 듯하다. 소영은 드라마 속 이지안을 떠올리고, 도청이 쓰이는 방식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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