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프닝 후 본 영상이 나오기 전 제작사나 배급사 로고가 화면에 나올 때, 해준(박해일)은 요즘 살인사건이 없는 이유로 날씨를 꼽는다.
또렷하게 모든 걸 보기 좋은 날, 내리는 햇빛으로 도파민이 분비돼 기분이 우울하지 않은 날에는 강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게 '보통 영화의 공식'이다.
발화 뒤 첫 장면. 해준과 수완(고경표)이 실내사격장에서 사격을 하고, 표적지를 받아든다.
이때 가림판을 통해 둘을 정확히 둘로 분리된다. '보통 영화의 공식'에서, 이런 구분은 의미심장하다. 대립 항을 뜻한다. 즉 수완이 걸림돌이 될 거라 말하며 영화가 시작한다.
이런 추측(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다르다. 수완은 대립 항은 아니고, 데칼코마니 역할을 한다.
@엇박, 절름발이가 OO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만족한 부분은 이런 묘한 어긋남이 주는 재미였다.
포커스 인-아웃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시선 공식을 어겨 실물 발화자가 아닌, 거울에 비친 상이나 청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 외 서래(탕웨이)를 향해 가속하는 해준의 차에서 속도계가 아닌, 그의 반지를 비추는 식이다.
중국어 번역은 발화 시작점과 도착점이 명확히 구분된다. 직접 한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해줌은 기계의 목소리를 통해서야 이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물론 이 과정은 반드시 오해를 수반한다. '심장'과 '마음'처럼. '붕괴'와 '무너지고 깨어짐'과 같이.
이런 불일치는 영화의 느슨한 긴장감을 만든다. 조일 듯 조여지지 않도록 대화를, 답을 끊는다. 씬은 유려하게 건너뛴다(점프). 풀어지듯 그렇지 않도록 지연된 답을 붙인다. '미결'의 의미와 같이. 무너지고 깨어지다 차돌이 되고, 모래가 되듯이.
결말에 다다르는 중 감독은 이런 미묘하게 이어지는 리듬을 한 번 찢는다. 녹음 파일에 자신의 고백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된 해준은 화들짝 놀라고 재생을 멈춘다. 마음을 다잡고 재생할 때, 관객의 위치는 휴대폰 안이다. 밖의 해준을 바라본다. 해준이 음성 파일을 건너뛰자 관객의 화면도 넘어간다.
관객은 주로 높은 곳에서 한껏 아래의 차량을 내려다보듯이 세로줄의 수학(이성)적으로 화면을 쳐다본다.
헤어질 결심에서 엇박은,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는 주체와 기계 속에서 밖의 부름에 응답하는 객체의 부딪힘이다. 두 실체가 충돌하며 만드는 기묘한 짜릿함이다.
동시에 영화를 단지 영화로 보게 만든다. 올곧게 본다는 게 허상이라는 걸 상영시간 내내 주창한다.
감독은 공식을 가지고 논다. 범인은 체조선수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형사는 바로 보려는 노력에 엇박을 타다 이내 전다. 절름발이는 형사다.
'이포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살인했다는 걸 알면, 좋아하기를 그만둡니까?'
@다른 엇박, 해준이 말하는 올곧음
해준이 영화가 시작할 때 한 말과 반대로, 안개가 자욱한 이포는 조용한 동네다.
해준이 서래를 떠난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게 볼 듯하다. 그렇지만 도피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할 거다.
영화 내내 해준은 도망치고 피한다. 이 말이 동의를 얻기 위해선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해준은 서래와 자신이 닮은 이유를 '바로 봄'이라 말한다. 자신이 항상 직면하는 태도를 지녔다는 데 자부심 있다.
최연소 경감인 해준은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사건에 집착하고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바로 보려 애쓴다.
그렇지만, 해준은 그래 본 적이 없다. 그가 말했듯이, 피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볼 뿐이다. 기도수가 오르고 떨어진 길을 바라보는 데 집중한다.
피를 무서워하는 해준은 가해자나 피의자의 시선으로 직시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눈(일어난 결과)에서 돌아가는 방식으로 수행할 뿐이다.
감시라는 명목으로 서래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피한다. 아내 정안(이정현)과의 관계 중 상대가 아닌, 곰팡이 자국을 본다. 결벽일 수도, 혈흔이 튄 모양을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부부 관계는 아니다.
그는 서래의 옷을 보고 혼자 초록색이라고 말한다. 파랑이 주로 비추는 청록색 옷에서 홀로, 펜타닐 알약에 가까운 초록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바로 보는 사람이 아니다. 결과에 맞추는 사람이다.
기도수 사건에서, 임호신(박용우) 사건에서. 아내와의 관계에서, 서래에게서.
해준이 일련의 사랑 고백 후 서래를 떠난 건, 역설적으로, 사랑해서다.
그가 자부심이라 말하는 형사로서의 직업윤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는 재수사했을 거다. 그가 헤어질 결심을 한 그 순간에도 '자부심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떠나지 않았을 거다.
사랑을 직시하고 안온한 가정을 포기하고 형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저버리며 사람을 두 번이나 죽인 서래와 함께 살기 두려워, 그는 도망쳤다. 비겁하게.
그의 올곧음이 사실 별거 아니라는 점은 신발에서 가장 잘 설명된다. 그는 수사할 때 운동화를 신는다. 뛸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영화에서 신발끈 묶는 장면은 두 번 등장한다. 서래와 절에 갔을 때, 해변에서 서래를 찾을 때. 절에서는 묶은 뒤 음성 파일을 듣고 지웠다. 해변에서는 직후 파도에 허우적대느라 뛸 수 없었다.
신발끈을 묶는 건 적극적인 준비 행동이지만, 그에게 두 번의 묶음은 무의미했다.
"우는구나, 마침내" 그는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정박, 서래의 사랑은 실수를 낳고
"당신이 사랑한다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는 잉크처럼 서서히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라, 파도처럼 오고 갔다.
서래는 정확하다. 법적인 의미의 명확성은 아니다. 서래는 판결에 의해 소유권을 잃은 할아버지의 산이 누가 뭐래도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안다.
서래가 올곧을 힘은 직시다.
목표가 명확하고, 결과를 위해 체계적으로 과정을 설계한다. 한국어가 서툰 젊고 예쁜 외국인 여성이라 모두들 방심하지만, 서래는 끈기 있을 뿐이다.
엄마를 죽였다. 엄마를 위해서. 남편을 죽였다. 자신을 위해서. 철썩이의 엄마를 죽였다. 해준을 위해서.
해준이 반지 자국을 쳐다보자, 서래는 반지를 낀다. 휴대폰이 두 개다. 하나에는 철썩이 위치추적 앱을 심어 놓았다. 서래도 안다. 공교롭다는 말에 불쌍한 여자라고 답한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명확히 수행하던 서래는 두 번의 잘못된 판단을 한다.
한 번은 그와의 결별을 부른, 월요일 할머니에게 가도록 한 것. 서래는 이쯤 긴장이 풀렸다.
다른 한 번은 해준이 이미 모두 알 거라는 말. 해준이 말했듯이 자신과 그가 같은 종족이라는 믿음이다.
서래가 직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잃을 게 없어서다. 하나뿐인 가족을 떠나보냈다. 자신을 물체로 보는 남편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해준이 좋아지면서 서래는 실수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에 미뤄 서래의 마지막 선택은 안타깝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에게 남는 단일한 가능성인 미결 사건으로 남는 걸 택한다.
자신의 짐, 미련, 남은 끈이었던 유골함을 산에 뿌린다. 극 초반 자살 충동을 말하며 서래를 비췄듯이, 항상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뒀던 펜타닐로 철썩 모에게 편안함을 준다.
서래는 시계를 보며 죽을 시간을 세밀하게 정했다. 밀물 때가 오기 전 땅을 파고, 밀물에 맞춰 안에 들어간다. 그가 죽어 떠오를 쯤에는 어둑해 아무도 못 볼 거고, 썰물과 함께 시체는 먼바다로 나갈 거다.
그랬다면 좋겠지만, 바위 더미에 걸려 다음날 아침 발견될 거다. 사랑에 따른 선택은 실수 연발이었으니까.
도파민.
해준은 서래와 있을 때 편하게 잠들었다. 해준은 위스키를 힙플라스크에 따라 마시던, 손을 우두둑거리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했다.
해준은 서래를 피의자로 본다고 말했고, 서래는 그게 좋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심 알았을 거다. 산에 올라갔을 때,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래는 자신을 껴안았고, 자신의 비겁함으로 편안할 기회를 잃었다.
@직시, 참을 수 없는 두려움
경로 이탈은 무섭다.
존경하는 선배 형사를 따라 부산까지 내려간 수완은 해준의 이상행동에 다른 짭새랑 똑같다고 질책하다 결국 선배가 호구같이 착해서로 자위한다.
연수(김신영)는 최연소 경감이자 서 내에서 따돌림당하는 자신을 챙겨주는 해준을 신뢰한다. 그가 이성적이지 않은 이유로 임호진 살인사건 수사 방향을 잡아도 질문만 할 뿐, 신뢰를 멈추지는 않는다.
산오(박정민)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나쁜 남자만 만난다고, 철썩이는 임호진이 자신의 엄마를 죽게 했다고 믿는다.
정안은 원전 완전 안전하다고 말한다.확신이지만, 동시에 강조다.
해준이 '진실한 사랑을 했노라' 믿는 관객은 많을까, 적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사랑하던 두 사람은 죽기 직전에야 화합했다. 죽음이 닥치지 않았다면, 편안함에 이를 수 없었다. 상대를 직시하려는 모든 노력이 결국 자신의 괴로움으로 돌아왔기에. 쿤데라의 실존주의와 달리, 직시는 해피엔딩을 이끄는 단일한 답은 아니다.
+ 엔딩 이후 추측. 이 주임과 살림을 차릴 듯이 떠난 해준의 아내는 서래의 자살과 해준의 변명에 따라 돌아올 거다. 그렇게 해준은 평범해 보이는 삶을 이어갈 거다. 그리고 불면을 이어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