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계약’이라는 게 있다. 그건 출판도 마찬가지여서 출판사와 작가는 계약 관계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출판사와 작가는 5년 기한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관계의 이음과 단절을 정한다. 계약이라는 말은 딱딱하다. 꺼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 살아보면 알게 된다. 계약은 이쪽과 저쪽을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것을. 계약은 내용대로 지키면 만사형통이다. 계약에 ‘인간적’ 조항을 가감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도 계약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한다. 계약을 지키려 노력한다. 지키지 못하면 반성한다. ‘객관적’으로 일하려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양면적이어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에겐 다르게 비치나 보다. ‘출판의 온도’가 낮다고 할까. 좀 더 배려하고 챙겨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의 피드백을 듣는다. 청정하고 자유롭게, 세상사 담담히 대하고 싶지만 그렇게 살 수 없다. 쉽지 않다.
아무튼 그렇게 책은 남고 떠난다. 얼마 전 출판사를 지탱해준 한 권의 책이 떠났다. 적지 않은 공백을 남긴 책이기 때문일까. 동료 출판인들이 걱정해주었다. 독자들도 궁금해 했다. 정작 나만 태평했다. 서로의 ‘인연’이 다한 것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영향은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시그니처 메뉴가 실종되면서 돈과 평판에 타격을 받았다. 거기에 코로나19가 덮쳤다. 그 책이 있었다면……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도 인간이니까. 그렇게 연연하는 나를 감춰왔다. 사실, 힘들었다.
위로와 치유는 뜻밖의 인연으로 찾아왔다. 이제 더는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북노마드 판’ 책을 어느 독립 서점에서 발견해 택배로 받아서 갖고 있다는 독자의 한마디에 내면의 불안함이 스르르 사라졌다.
- 새로 나온 책 잘 알아요. 그래도 ‘윤동희’ 이름이 판권에 적힌 책을 갖고 싶었어요.
쓰는 자가 전부인 책 세상에서 만든 자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 영화 역사상 가장 벅찬 아름다움을 선사해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제목으로 이어진 명대사. 24살 청년 올리버가 17살 소년 엘리오에게 건넨 그 말.
-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이제 나는 다른 온도로 책을 만들려고 한다. 우정으로, 사랑으로.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사랑’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