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케이크 Jan 29. 2021

인생은 나비효과

그때 그 선택이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가끔 거실 소파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난 지금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대학교 때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와 나는 꽤 비슷한 삶을 살았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대한민국의 정규 초중고 교육과정을 밟고 지방 4년제 대학교 같은 과에서 같이 공부했다. 난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고 중국 어학연수를 갔고, 그녀는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중국 대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난 1년 휴학을 했기에 그녀보다 1년 뒤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그녀는 친척의 인맥을 빌려 4학년 졸업 전 이미 취업을 했다. 그때 굉장히 부러웠다. 나는 왜 이런 인맥 있는 친척이 없을까 자기 비관도 했다. 내가 4학년일 때 만난 그녀는 멋있었다. 본인의 경제력으로 자기 관리도 하고 아직 대학생인 나에게 밥도 사주고. 


1년 뒤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 소재한 외국계 대기업에 취업하게 됐다. 상상도 못 했다. 내가 그 말로만 듣던 강남으로 출근을 할지는. 그때 폴란드에 소재한 물류회사에서도 오퍼를 받았는데 당시 아빠의 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서울에 있는 회사에 가기로 했다. 


그 해 그녀와 나는 우리의 아름다운 청춘을 첫 직장에서 만끽하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고 첫 남자 친구의 결혼 제안을 거절하고 첫 시련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반면, 그녀는 첫 직장에서 만난 첫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상대가 어디에 땅이 그렇게 많단다. 부러웠다. 그렇게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됐고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방황하던 중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회사 사장님 추천으로 상하이 본사로 발령을 갔다.


상하이에서 남편을 만났다. 왜 일까? 그때는 아직 젊어서였을까?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은 사직을 하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의 로맨틱한 공기에 취해 밸런타인데이에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그때쯤 그녀는 아마 첫째 아이를 임신했었던 것 같다. 


2-3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느라 그녀와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했다. 간간히 메신저만 주고받았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 갈 일이 생겨 그녀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충격이었다. 나와 비슷한 배경과 삶을 살아온 그녀는 현재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착각했다. 희끗희끗 보이는 흰머리. 펑퍼짐한 옷차림. 남편이 밥을 할 줄 몰라 남편과 아기 저녁밥 때문에 허겁지겁 쫓기듯 식사를 하고 떠나는 뒷모습. 분명히 말하지만 그녀의 삶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개개인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누가 누굴 평가할 수는 없다. 그냥 그랬다... 내 추억 속의 그녀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누구보다 먼저 취업해 멋진 커리어우먼 에너지를 뿜던 그녀는 없었다.


그 후로 어느 순간 그녀와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대학 졸업 후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해야 했었고 그 선택으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연락을 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대화할 만한 공통 관심사가 없기에 왠지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주춤하게 된다. 마음으로나마 그녀가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우리는 과연 더 멀어져 있을까? 가까워져 있을까?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순간순간의 선택에 의해 살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현재 연봉의 1/3을 받고 이직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