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역시나 온몸이 찌뿌둥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바로 거실 불부터 켰다.
날이 추워졌기 때문에 새벽에 자다 깨서 나오면 차가운 공기가 나를 덮치는 거 같아 겉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이렇게 거실에 불을 켜면, 확실히 잠이 깬다.
일어났을 땐, ‘아..몸이 너무 피곤한 거 같아.. 다시 자야 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불을 환하게 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신이 말짱해지는 걸 보면
처음에 일어났을 때 피곤하다고 느낀 게 정말 피곤했던 거였나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일어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내 스스로 일어나지 않기 위한 핑계를 댔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그리고 나서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가지고 거실 책상에 내가 읽어두려고 쌓아놓은 책 앞으로 갔다.
보리차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펼쳤다.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벌써 3주가 다되어간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책도 한 두권만 놓은 게 아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으니 주문한 책도 많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많다.
예전엔 읽지 못해도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혼자 흐뭇해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나 둘 차곡차곡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꼭 정리되지 않고 켜켜이 쌓여있는 나의 삶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좀 열심히 읽어보기로 다짐했다.
취미로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치열하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혼자 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시간이 새벽시간.
나는 예전부터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게 좋긴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꽉 채워서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게 쉽진 않았기에, 나 혼자 얼마나 많이 시도하고 중간에 그만두기를 반복했는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창피해서 말 못 했지만, 내 스스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고 돌아 새벽에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를 좀 보람차게 살아보고자 다짐했던 순간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시도했지만, 제대로 못한 적이 많아서 스스로 실망했던 적도 수없이 많다.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난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계속 시도했던 경험들이 있어서 그런지 새벽에 울리는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건 이제 힘들이지 않고 바로 한다.
중요한 건 그다음.
매번 일어나서 다시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상태로 내 몸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던 패턴을 바꿔보고자 바로 거실에 불을 켰다.
처음엔 ‘불을 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뭐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신기하게 불을 켜니 내 비몽사몽 했던 정신도 켜지듯이 맑아졌다.
그렇게 나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욕심 내지 않고 천천히.
책을 비록 몇 장 못 읽더라도 한 장 한 장 내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듯이.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아, 뭘 하든 많이 그리고 빨리 하려고 하는 나의 성격을 조금 다듬어 주고 싶었다. 타고난 기질은 완전히 바꿀 순 없어도 어느 정도 다듬을 순 있다고 생각하기에 조금씩 노력하는 중이다.
분주하게 사는 내게 새벽의 시간은 가장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나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이 피곤하긴 했지만, 이제는 몸의 패턴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계속 인지하고 있었던 불면증도 잊게 되었다.
이렇게 거실 한쪽에 쌓여있는 나의 책들을 천천히 읽으며 한 권 , 한 권 정리해가려고 한다.
내가 포기하고 내버려 뒀던 삶의 조각들을 정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