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련 Feb 16. 2023

남편의 고혈압 극복기

episode 1

남편과 연애할 땐 보이지 않다가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그렇겠지만. 처음엔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어 많이 부딪히고 좌충우돌했는데 그럼에도 함께 살면서 천천히 서로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중이다.


연애 때 남편을 봤을 땐, 자기 관리가 굉장히 잘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옷도 참 깔끔하게 잘 입고

나와의 약속시간에 늦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언제나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깐.

차 안도 항상 얼마나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던지.

내 성격도 지저분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남편의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난 남편은 뭐든 스스로 알아서 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따로 케어해 줄 건 없다고 생각했었고 연애 때도 남편에게 내가 케어를 많이 받았고 나는 예민한 기질에 결혼하고 바뀐 삶에 적응하느라 주변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과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보니 생각보다 남편이 스스로 몸을 잘 챙기지 못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 때, 남편은 종종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고, 나는 사실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집중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머리도 아프고 몸에 기력이 없어질 때가 있으니 남편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한 번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거의 하루에 반나절 이상은 컨디션이 좋지 않고 진통제를 자주 복용하는 걸 보고 어쩌면 이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면 그날 하루 컨디션이 안 좋아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걸 느끼는데, 반복되는 고질적인 두통은 분명 남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결혼을 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온 날. 나는 남편이 고혈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남편은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고혈압이라니..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부터 고혈압이었다고 했었다. 그래서 고혈압이 그렇게 낯설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를 했다. 나는 아빠가 고혈압이어서 나이 드시면서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걸 보고 자랐기에 사실 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남편은 지금은 나이가 많지 않으니 합병증 같은 게 없겠지만, 나이가 들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고 아빠는 술을 좋아하셔서 그렇다 쳐도 남편은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데 고혈압이라니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왜 고혈압인지 한 번 생각해 봤다. 오래전부터 고혈압이었다고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기에는 남편의 일상생활에 고혈압이 주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했기에 고혈압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남편의 식습관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남편은 정말 고기를 좋아했다. 특히 삼겹살. 시댁에 가서 얘기를 듣기로는 20대 때 남편은 정말 저녁마다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고 했다. 그것도 항상 저녁 늦게. 밥과 야채도 없이 고기만 구워서. 야채는 잘 안 먹고 고기위주의 식단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 일하면서 혼자 살던 시절에는 편하니깐 피자와 햄버거를 그렇게 많이 먹었다고 했다.

연애 때는 남편이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왜냐면 나는 남편과 반대로 고기는 잘 좋아하지 않고 저녁도 늦게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기에 항상 조금씩 일찍 먹었다. 연애하면서 데이트할 때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항상 먹었기에 당연히 남편도 나와 식성이 비슷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 이런 식습관으로 부딪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나마 결혼하고 나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하니 남편의 평소 고기를 먹는 양이 많이 줄긴 했지만, 남편의 고기사랑은 여전했다.


나는 한 번 맞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은 끝까지 쭈욱 밀고 나가는 불도저 같은 성격이 있다. 남편은 하다가 잘 잊기도 하고 뭔가 타이트하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건 내가 규칙을 정하고 옆에서 계속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대대적인 우리 부부만의 프로젝트처럼 생각하니 동기 부여가 됐다. 고혈압에 대해 책을 읽고 유튜브도 보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열공모드가 발휘된 것이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적용하면서 습관을 만들어 삶을 바꿔야지 한 번에 크게 하려면 하다 지쳐 못할 거 같아서 우선 알아본 것 중에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했다.


1. 매일 아침 일어나면 입 먼저 헹구고 물 꼭 마시기.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혈관의 피도 움직임이 많지 않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의 활동을 돕기 위해 입을 헹구고 미지근한 물을 먹어주면 좋다고 했다.


2. 비트즙 매일 챙겨주기.

비트는 몸속 혈액을 맑게 해주는 성분이 있기에

매일 복용하면 좋다고 했다.


3. 오메가 3 챙겨주기.

이렇게 알아보기 전 영양제를 비타민 외에는 따로 복용하고 있지 않았는데, 오메가3가 혈관에 좋다고 해서 오메가3중 성분 함량이 어떻게 되는 게 좋은지 알아보고 복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남편의 고혈압 극복기가 시작된 것이다.

결혼하고 몇 개월동안 하나씩 천천히 삶에 적용해 보았다. 만약 남편 혼자 하라고 했으면 귀찮고 까먹어서 안 했을 텐데 나는 한 번 정해진 걸 챙기는 게 그렇게 힘든 사람이 아니라서 몸에 루틴으로 만들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남편이 채워줬던 것처럼 나도 내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부분을 남편에게 자연스럽게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신혼 초에는 사실 어린애도 아닌데 각자 몸은 알아서 챙겨야지 라는 마인드였는데 어느새 남편이 나의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내 몸 챙기듯 남편 몸도 챙겨보자!





다음 episode도 기대해 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여보, 브런치에 올린 내 글 좀 읽어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