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25.2.16)
오늘 소개할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 중인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입니다. 주목할 전시가 많아서 선택이 어려웠지만, 전시 의의, 가성비와 가심비까지 고려해서 정했어요. 해외로 나간 분들도 많지만 국내에서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 분들도 많으실 테니, 이 기회에 미술관을 찾아 즐기면 좋겠죠.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전은 작년 11월 28일에 개막했고 올해 2월 16일에 막을 내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 양국 국립 미술관의 첫 공동기획 전시로, 이번 덕수궁 전시가 끝나면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전시가 이어집니다. 2022년에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전으로 선보일 뻔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졌어요. 이번 전시엔 20세기 이후로 현재까지 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145명(한국작가 69명, 중국 작가 76명)의 작품 각 74점씩 총 148점이 출품됐습니다. 중국미술관 출품작 중엔 우리나라 국가유산청 격인 중국 국가문물국이 지정한 1~3급 문물 32점도 포함되었어요. 성인 입장료 4,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으로 관람료도 저렴하고, 이마저도 설 연휴(~1.30) 기간 동안엔 무료로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대한제국의 외교공간으로 활용됐던 덕수궁 돈덕전이 100년 만에 복원되어 2023년부터 개방되었는데, 핫플레이스가 된 돈덕전을 아직 못 본 분도 계실 테니, 두루두루 함께 보면 더 좋고요. 고궁은 언제 가도 좋고, 특히 설경은 이 계절에만 찾아오는 뜻밖의 행운이잖아요.
《수묵별미》는 수묵과 채색이라는 같은 매체와 표현 방식을 사용한 양국의 화풍이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등 전통 회화 장르부터 현대 구상, 추상 작품까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어요. 수묵화를 주제로 하지만 모든 작품이 다 한지에 먹그림은 아닙니다. 전시는 각 층 복도를 사이에 두고 한국 편과 중국 편으로 각 2부 총 4부 구성으로, 연대순으로는 1층을 보고 2층을 보면 되는데, 나라별로 보면 한 번은 연도가 꼬입니다. 저는 1층 중국화 1부 보고 2층 중국화 2부 본 후 2층 한국화 2부 보고 내려와서 1층 한국화 1부를 봤어요. 한국화 작품은 자주 봤던 거라 연대가 제겐 중요하지 않아서요.
중국화 1부 <전통의 재발견>에서는 근대 중국 수묵 예술 100년의 역사를 대표하는 대작들을 소개합니다. 희귀성, 역사성, 예술성을 기준으로 높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들로, 중국 국가문물국 지정 1~3급 문물 총 32점(1급 5점, 2급 21점, 3급 6점)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죠. 중국 회화 전공자로서, 이 정도 라인업을 만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만 말씀드릴게요. 작품마다 설명이 부착되어 있는 것도 이번 전시 특징인데, 중국화 1부 전시장엔 설명판 색을 2개로 나눠 명품 중의 명품을 구분해 뒀어요. 중국미술사를 잘 모르더라도, 무조건 봐둬야 하는 명작들이니 1층 중국화 1부 전시장은 조금 더 집중해서 감상해 주세요. 정말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대가들의 작품들입니다.
1층 중국화 1부 전시장 작품들을 저는 디테일 위주로 봤어요. 먹의 농담을 어떻게 조절했는지, 붓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기준으로요. 유화나 현대 회화에 비해 전통 수묵화나 수묵채색화를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데, 수묵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제 생각엔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잘 몰라서 그렇게 느끼지 않나 싶어요. '한지나 비단에 먹으로 그린 그림은 올드하다'라는 선입견도 있을 거고요.
저는 수묵화를 볼 때 주제나 소재, 전반적인 화면구성 및 조형 외에도 앞서 언급했듯 먹 농담이나 먹 색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붓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를 유심히 봅니다. 먹은 물을 섞은 정도에 따라 담묵, 담중묵, 중묵, 중농묵, 농묵으로 나뉘고 먹색은 똑같은 검정이 아닌 초묵(焦墨), 농묵(濃墨), 중묵(中墨), 담묵(淡墨), 청묵(淸墨)으로 구분합니다. 한 작품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먹색을 사용했는지, 농담을 조절했는지, 붓을 놀렸는지 등을 눈으로 따라가며 보는 것도 꽤 재밌어요.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이미지가 주는 감동과 몰입의 순간이 있거든요.
또, 작가가 유학을 다녀왔는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진경을 선호하는지 주관적인 감정을 담았는지 등 작품 창작의 배경이 되는 요소들도 고려 및 추측하며 감상합니다. 이건 전공자의 영역이에요. ^^::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사조나 화풍을 나누지 않았고, 연대기별 구성도 아니니, 먹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중점을 맞춰서 보면 좀 더 흥미롭고 재밌게 관람할 수 있을 거예요. 소재상으로 재밌는 작품들도 많고요.
중국화 2부에서는 1990년대 이후 화단에서 대표성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13만여 건의 소장품 중 선별된 거니, 가치에 대해 이견은 없지만, 조금 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이 오지 못한 건 좀 아쉽더라고요.
여러 작품 중 2층 중국화 2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석(韩硕,한숴) 작가의 <화가画家>였어요. 이 안에 담긴 인물들은 제백석(치바이스), 반천수(판텐쇼우),황빈홍(황빈홍),임풍면(린펑몐)으로, 1층에 작품으로 소개된 대가들입니다. 인물화에 능한 후배가 그리는 선배들의 초상이라니, 멋지잖아요.
1층 한국화 1부에서는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을, 2층 한국화 2부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작품을 통해 전통 회화가 현대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전통회화 매체에서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기법, 화폭의 크기, 소재 등의 변화에 집중해서 보면 재밌어요. 여러 생각 없이 바라만 봐도 좋은 작품도 많고요.
1층 한국화 1부엔 국가 지정 등록문화유산 한 점이 출품되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이상범 화백의 <초동>(1926)입니다. <초동>은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근대적 산수화를 모색한 연구 단체인 동연사(同硏社)의 주요 멤버로 활동한 그의 성과를 보여주는, 초기작 가운데 드물게 현전 하는 작품이라고 해요.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풍경을 그리면서도 서양화의 공간감과 원근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통 산수에서 근대적 산수로의 변모를 보여주며 관전 산수화의 전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평가받은 작품이죠.
1,2층 통틀어 저는 이런 작품들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감상도 결국은 취향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거니 호불호는 있겠지만, 좋고 싫음보다는 '내 방에 이 중 하나의 작품을 건다면?', '이 중 하나의 작품을 가질 수 있다면?'이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전시를 관람하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대할 순 있겠죠.
작품 설명은 현장에 다 되어 있으니 중국미술관 소개만 조금 덧붙일게요. 중국미술관은 1963년 개관한 국립 미술관입니다. 중국 베이징에 있어요. 베이징 대표 명승지인 고궁박물원 북문 신무문과 징샨공원 동문, 쇼핑가로 유명한 왕푸징거리와도 나름 가까워(베이징인 기준, 평소 잘 걷는 분) 도보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본관은 전통과 서양 건축 조형이 잘 어우러진 형태로, 본관 정면에 걸린 '중국미술관中国美术馆' 편액은 마오쩌둥의 서체입니다. 미술관 방문 인증 사진을 찍는다면, 이 편액이 잘 보이는 외관이나 로비를 찍으면 돼요.
1층부터 6층까지 21개 전시실이 있고, 안팎으로 면적도 커서 소장 작품들을 천천히 보려면 꼬박 하루는 쓰셔야 합니다. 소장 작품만 13만여 건으로, 소장품 중엔 소식苏轼、예찬倪瓒、당인唐寅、서위徐渭、임백년任伯年、오창석吴昌硕、황빈홍黄宾虹、제백석齐白石、서비홍徐悲鸿、임풍면林风眠、유해속刘海粟、반천수潘天寿、장조화蒋兆和、오작인吴作人、이가염李可染、동희원董希文、오관중吴冠中 등 중국 대가들과 콜비츠, 피카소, 달리, 안셀 애덤스 등 해외 대가들의 작품까지 수집폭이 넓습니다. 베이징을 갈 때마다 무조건 들리는 미술관으로, 얼마 전에 갔을 때도 전관에서 대가들의 명작이 전시 중이라 눈 호강을 듬뿍하고 왔어요. 공복과 체력 소진으로 작품들을 눈 스캔만 하고 왔지만, 연말 전시라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이 작품이었습니다.
왕효명 작가의 유화 <미래세계>는 교재에 실린 중국미술관 소장품을 선보인 전시 출품작으로, 2013년 초등학교 미술교재 2학년(하), 4학년(상) 권에 실렸대요. 수묵 대가들의 작품만 있을 것 같은 중국미술관이지만, 다양한 소재와 매체 작품들도 많습니다. 중국미술관 소장품은 대부분 중국 회화사 명품이나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이니, 베이징에 갈 기회가 된다면 꼭 들러보세요. 그전에 덕수궁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전시로 워밍업 하시고요.
참고로, 중국미술관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내외국인 모두 위챗으로 예약 후 예약 내용 및 신분증 확인 후 들어가면 되지만, 외국 전화번호로는 위챗 예약을 할 수가 없어요. 현장에 가서 외국인이라고 하면 현장 예약을 도와주니 어려워 말고 바로 가시면 됩니다. 시스템 상으로 외국인 예약이 안 되는 걸 알아서 현장에서 친절하게 잘 처리해 줘요. 중국미술관에 관한 더 알고 싶다면 예전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새해 복 가득 쓸어 담으시고, 되는 일 많은 한 해 보내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