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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동네 목욕탕』(2025)

신간 소개

신간 소개 『화양연화花樣年華, 동네 목욕탕』 (2025), 네버레스홀리다, 도트북


3월 끝자락 일요일 오후입니다. 어젠 강풍을 타고 갑자기 쌀알 만한 우박이 휘몰아쳐 다시 겨울이 온 건가 싶었어요. 그러다 동네 입구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노랗게 핀 개나리와 산수유, 흰 목련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현재 진행 중인 역대 최악의 산불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육체적,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입은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말로는 표현 못할 참담함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잎새를 틔울 새싹들처럼 모든 분들의 마음에도 희망이란 싹이 굳건히 자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은 얼마 전 발간된『화양연화花樣年華, 동네 목욕탕』책을 소개드립니다. 우리 일상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글은 제가 썼고(p27 글 제외) 얼레지 작가님이 그림을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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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목욕탕이라는 소재 선정은 2022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진행한 전국 공모 기록사업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관심사를 공유하던 작가들과 의기투합해 '오래된 동네 목욕탕을 기록 대상'으로 전국 공모에 응모했고, 최종 여섯 팀에 선정되어 사업에 참여했죠. 사업 기간은 5개월 여로 길지 않았는데, 조사 대상을 물색하고 현지 조사 및 인터뷰, 정리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 사업이 진행된 몇 달간은 제 온 시간을 오롯이 이 프로젝트에 쏟았어요. 프로젝트 기간 내내 크고 작은 피부 질환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애썼고, 사업 결과물을 제출한 후에도 정리 작업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고생한 기억이 많아서인지 한동안은 들여다보지 않다가,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몇십 권의 보고용 책 밖엔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2023년부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새로 쓰고 고치고 보완해서 올해『화양연화花樣年華, 동네 목욕탕』이란 이름의 단행본을 도트북을 통해 낼 수 있었어요.



『화양연화, 동네 목욕탕』은

언젠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를 동네 목욕탕의 이야기이다.

세대에 따라 친숙하면서도 낯선 목욕탕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목욕탕과 물아일체 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과

현실의 기로 위에서 추억은 보존하되 형태는 바꿔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화양연화에서 화무십일홍으로

자연의 섭리를 체감하며 시작에서 끝으로,

청년에서 노년으로 나이가 지긋하게 들었지만

한결같이 운영 중인 동네 목욕탕과 조금 더 일찍 다른 행로를 선택한 목욕탕까지,

깊은 애정을 담아 쓰고 그렸다.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장소가 되어 버린 동네 목욕탕들을,

이 책과 함께 여행하듯 들러보길 바란다.

『화양연화花樣年華, 동네 목욕탕』 네버레스홀리다



image.png?type=w773 차례 이미지 출처: 알라딘 책 소개

인트로 격인 1장 <목욕탕 사용 설명서>에서는 목욕탕 필수 준비물과 예절, 목욕탕 경험담 등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어딘가를 여행할 때 관련 준비물을 챙기고 지역에 대한 경험 후기로 정보를 얻는 것처럼, 목욕탕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한 정보를 담았어요. 목욕탕 문화가 익숙한 분들에게도 새로울 정보가 있고요.


목욕탕을 취재하면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는데, 취재 대상은 적어도 30년 이상의 업력이 있고 현재도 운영 중인 목욕탕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목욕탕의 모습도 담고 싶어서 조사 지역 역시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확장했고요. 1장 중 제 경험담으로 풀어낸 '원조의 품격, 온양 제1호 원탕'과 '엄마랑 등 밀던 날'은 온양 신정관 온천탕(1953)과 서울 신신탕(1974)으로, 모두 반세기 이상 동네 이웃이 되어준 목욕탕입니다. 특히 온양에 있는 신정관 온천탕은,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조금의 불편함만 이겨내면 아주 멋진 경험을 하실 수 있으니 꼭 한번 가보세요.

IMG_7272.JPG?type=w773 신정관 온천탕 외관©네버레스홀리다

2장 <화양연화 동네 목욕탕>은 이 책의 핵심 파트입니다. 현재도 운영 중인 업력 50년 이상의 목욕탕 이야기를 직접 운영 중인 분들의 인터뷰로 정리했어요. 우리가 목욕탕을 다니긴 해도 목욕탕을 운영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잖아요. 젊을 때부터 노년이 될 때까지 50년 이상 한 직종에 종사하면서 느낀 소회와 목욕탕을 운영·유지해 오면서 느낀 것들, 부모님으로부터 목욕탕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2대 대표님의 이야기까지, 이분들의 다양한 삶의 궤적이 왜곡되어 보이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지역 역시 서울, 부산, 제주도로 다양화했고요.


장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취재를 하고 원고를 정리하면서 가장 와닿았던 단어가 '화양연화'였어요. 업력이 오랜 만큼 목욕업이 호황기였던 시절을 경험했고, 젊을 때부터 노년까지 목욕탕과 함께 보내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오면서 가정도 이루고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줬다는 의미로, 이보다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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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서림탕©네버레스홀리다

2장에는 조금 특별한 목욕탕 이야기도 있습니다. '비타민목욕탕'은 연탄봉사로 잘 알려진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서 600명의 기부금을 모아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해 만든 공공 목욕탕입니다. 2016년부터 백사마을에 있었는데, 지역 재개발로 인해 현재는 그곳에 없습니다. 폐업은 아니고,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에서 '비타민목욕탕'이란 이름으로 운영 중입니다. 언젠가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비타민목욕탕'이란 이름과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 목욕탕 사업은 지속될 거라, '폐업 없는 목욕탕'이란 제목을 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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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에 있던 비타민목욕탕©네버레스홀리다

3장에 <그럼에도, 목욕탕>에선 다양한 형태의 목욕탕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목욕탕부터 팬데믹으로 주목받은 프라이빗 목욕탕, 목욕탕의 구조는 갖추고 있지만 현재는 다른 방식으로 목욕탕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곳 등 목욕탕의 변주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죠. 부산 허심청의 경우는 모회사인 호텔 농심보다 더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랜드마크 목욕탕입니다. 대형 놀이공원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목욕에 관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1991년 설립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는데, 저는 목욕탕 취재를 시작한 2022년에 처음 가봤어요.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은 곳으로, 이 일대가 온천 지역입니다. 부산에 가면 예전엔 해운대, 광안리 등 유명한 관광지만 다녔는데, 이곳을 알고 난 이후로는 온천장 역이 제겐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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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허심청©네버레스홀리다

청주에 있는 학천탕은, 고 김수근 건축사에게 설계를 맡긴 목욕탕입니다. 제가 취재로 만난 목욕탕 중 가장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공간이었어요. 아쉽게도 현재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진 않지만, 언젠가 고급 목욕탕(사우나)이 들어설 예정이고, 현재 건물 1,2층에선 카페 목간이란 이름으로 카페를, 3층에선 학천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운영 중입니다. 가보면 아시겠지만, 내부 인테리어가 지금 목욕탕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잘 보존되었고, 감각 좋은 대표님께서 손수 하나하나 애정으로 꾸민 설비들이 정말 멋지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청주 중심에서도 핫플레이스이고, 이 주변에 볼만한 장소들이 밀집되어 있으니 청주에 가면 무조건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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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천탕 내외부. 카페 목간 및 음료 세팅©네버레스홀리다

4장 <수고했어, 목욕탕!>은 사라진 목욕탕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재개발 지역에 있던 목욕탕이 사라지면 그 이후 신규 목욕탕이 들어서지 않았는데,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밀집, 밀접, 밀폐'장소였던 목욕탕은 기하급수적으로 소멸됐습니다. 지금까지 운영되는 곳들은 그 험난한 파고를 여러 방식으로 보완하며 버텨온 곳들로, 이 역시도 대부분 위태위태하죠. 재개발이나 팬데믹이 아니어도 목욕탕이 줄어드는 이유는 있겠지만, 동네 터줏대감처럼 자리했던 공간이 사라지면 그 안에서 함께 했던 기억과 추억도 보존되긴 어렵잖아요. 그렇게 동네에서 오랜 사랑을 받다 흔적만 남긴 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몇몇 목욕탕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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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탕 ©네버레스홀리다

책 마무리에는 목욕탕 취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혹은 다수가 불편하다고 느낀 점에 대한 것들을 '우리가 바라는 목욕탕'이란 이름으로 정리했습니다. 목욕탕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러면 어떨까요? '라는 목욕탕 발전을 위한 제언을 담고 있습니다.


동네 목욕탕 취재하고 꽤 오랜 시간 목욕탕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면서 제겐 남다른 애정이 생겼습니다. 건물이지만 그 안을 채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른 직업군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고요. 소재는 동네 목욕탕이지만, 이 책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주변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게 이 책은 '미션 완수'의 의미도 지닙니다. 대상지를 조사하고 인터뷰 섭외 요청을 드리면서 '꼭 도서관에 꽂힐 책을 만들겠다'라고 대표님들께 약속드렸거든요. 취재지 섭외 과정에서 거절을 많이 당했는데, 일면식도 없던 저희에게 시간을 내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요. 하지만 당해 연도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후 한 해 한 해 보내면서 인생과업의 무게가 점점 묵직해졌습니다. 그 약속을 이제라도 지키게 되어 정말 다행스럽고, 보내드린 책을 받은 목욕탕 대표님들이 보내주신 문자 하나하나가 큰 보람이 되었습니다.


도서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공공도서관 누리집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볼 수도 있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일독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책 소개에 사용한 사진은 단행본에선 볼 수 없고 일부만 그림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후에 이 책을 소개할 자리가 있다면, 그때 취재 이야기와 덧붙여 기록 사진들을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이제 막 출간된 『화양연화花樣年華, 동네 목욕탕』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DSC00001.JPG?type=w773 홍릉동에서 찍은 목욕 합니다 입간판 ©네버레스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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